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한다. 죽도록 공부했던 시스템 엔지니어링 부문이라는 게 문학적인 표현과는 어떠한 공통분모도 없는 분야였던 탓도 얼마쯤은 있을 것이다. 하기사 그보다는 그 순간을 겪은 당사자로서 말문이 막혀버리는 탓이 더 크겠지만.
나중에 나이를 먹고서 그 때의 사건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 거대한 네트워크는 참 간단하게도 그 순간의 정보들을 토해내주었다. 제 몇차 태양광 분쟁. 사망자 --- 명. 피해액 ----- 달러. 수치로 전환된 그 것은 시스템 체계의 기본을 이루는 명령어들처럼 무덤덤했고, 그 내역을 흝으면서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무기질적인 언어의 나열이 말도 안되는 미사여구로 꾸며놓은 ‘비극’의 대본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전부 희미해졌지만.
..그건 거짓말이려나.
아마 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거기에 대답하기도 어려웠다. 적? 아군? 당시 어느 쪽 무기가 태양광 시설 개발자들이 머무는 거주지역을 향한 건지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 곳에는 폭력이 있었다. 저항도 무엇도 무의미해질만큼 압도적인 크기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은 내 눈 앞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새빨갛게 불타는 불꽃과 산산히 부서진 뼈조각과 빨간 피와.. 그 것들은 그렇게 희미해지지도 선명해지지도 않은 채 머리 속에 달라붙었다.
아버지는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어머니보다 폭발 근원지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영문도 모르던 나를 감싼 어머니의 체격은 너무 연약해서 아이를 다 가리지는 못했다. 아마 허공에 흩날린 살점중에서는 얼마만큼 내 것도 섞여있었을 것이다. 무차별적인 폭격과 부서진 건물더미 사이에서 용케 나를 끄집어올린 인간들은 별로 이해가 되지도 않는 동정과 연민을 담아 내버려두었으면 분명 죽었을 아이에게 기계로 만든 생명유지장치를 달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것은 국가의 ‘보상금’으로 기계 내장과 인조 근육같은 걸로 바뀌었고, 몇백 년전 SF영화에 나오던 사이보그같은 꼴이나마 나는 걷고 말하고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것을 싫어한 적은.. 아마도 없었다. 그러나 고마워했냐고 물으면 역시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계 내장들 사이에 앙금처럼 달라붙은 것들은 대상이 없는 감정이었다. 그 것들을 탈선으로 표출해도 될만큼 낙낙한 상황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상을 저주하기에 나는 체념이 빠른 성격이었다. 그저 접합부에 매달린 금속들이 아파오는 날이면 심장을 좀먹어들어간 그 사고에 대해 망연히 생각했다. 자해도 한번 한 적 없었으니, 겉보기에 나는 무척 정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을 메운 그 기계들이 감정 위에 방수포를 씌운 것마냥 막을 하나 만들었다. 그 것에 싸인 감정들은 흘러나오지도 새어나오지도 않아서, 그 것들을 버리지도 썩히지도 못한 채 나는 그렇게 남은 삶을 살았다. 하기사 그 것들을 썩혀버리기에 몸의 절반을 차지한 금속들은 너무 튼튼했다. 너무 튼튼해서, 어쩌면 솔레스탈 비잉을 선택할 때조차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끌리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죠 뭐.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진 웃는 얼굴로.
그 사건 현장에서 나는 홀로 살아남았다. 살도록 강요받았다. 망가진 나를 끌어낸 사회가 살아갈 것을 강요했다. 아마 그 것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했다면 분명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근절이라는 꿈같은 이상을 외치는 그 속에 스며들었을 때에도 나는 복수는 꿈꾸지 못했다. 그런 것을 꿈꾸기에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게 아마도 살아남아버린 나의 죄였으니까.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톨레미가 부서져내렸을 때, 나는 영문도 모르고 몸을 움직였다. 처음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몸이 재멋대로 움직였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종잇장처럼 찢어지는 톨레미의 외관을 보면서 그 때의 폭발을 떠올렸다. 부서진 전함이 잔재가 떠도는 별의 우주는 조금도 붉은 빛을 띄지 않았다.
부서져간 몸이 아프지는 않았다. 토혈을 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녀가 웃고서, 언젠가 그 폭발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등 뒤에서부터 그녀의 몸을 관통한 부서진 파편을 발견한 건 그 때즈음이었다. 내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나를 가렸었음에도 그 폭력이 내 몸의 절반을 가져갔던 그 때처럼, 내 보호라는 건 별로 쓸모 있는 게 못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웃어주었다.
그 언젠가처럼 폭음은 현실감이 없었다. 그 때즈음은 고통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미소지은 그녀의 얼굴이 내가 본 마지막 풍경이었다. 찢어져 흩날리던 시체의 잔해들도 무엇도 이 별의 바다에서는 보이지 않을테지. 어쩐지 안심마저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또다시 홀로 남겨져 살아남는 업을 겪지 않는다는 것에.
- 어이, 어딘가의 누군가씨. 듣고 있어?
나는 마지막까지 내가 처했던 상황들을 저주하진 못했어. 연약한 놈이라고 비웃을 거라면 그래도 돼.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여기까지였던 모양이고말이지...아아,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져주면 좋을텐데. 내 몫까지. 내 몫까지.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나는 지금 이 곳에서, 혼자 살아남지 않는 것에 감사할 정도로 바보라서.
..응, 미안. 두 번은 싫다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을 수 있었다.
그 것만으로, 남겨진 이후 살아왔던 삶을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
fin.
1기 마지막화를 본 시점에서 썼던 리히티 이야기. 싱숭생숭해져서 꺼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