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하세계의 마법진에 순서대로 번호를 배열할 것. 그 것이 밑그림자 속에 있는 그 곳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깔대기처럼 가운데로 모이게 되어있는 층층의 미로를 달리고 달리는 동안 그 세계의 왕은 다섯명 중 단 한명의 뒤만을 쫓았다. 마지막 층을 내려가는 사이에 전령은 윗 세계에서 동료였던 남자가 자신의 등 뒤를 쫓아왔음을 깨닫는다. 어째서? 의문을 가지는 사이 그는 전령을 쓰러트린다. 거기서 기억이 한번, 끊어지고. 눈을 떴을 때는 진의 한가운데였고 자신의 손에는 여전히 마법석이 들려있었다. 놀라서 고개를 들자 그 앞에는 그 세계의 왕이 서 있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복잡한 얼굴은 익숙한 어릴적 친구의 얼굴이었다. 세계의 왕은 그에게서 마법석을 빼앗아 진에 배열했다. 세계가 무너지는 동안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가라며 나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전령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렸다. 친구의 손을 잡은 채. 무너지는 세계를 뒤로 하고 나온 해안가는 서서히 물에 잠기고 있었다. 그들을 태울 배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왕은 전령을 보내려하지만, 전령은 왕의 손을 붙잡고 남았다.

그리고 또 언젠가의 미래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왕은 전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그를 떠밀지 않았다. 푸른 마력으로 만들어진 배는 무서운 속도로 바다를 넘어 현실 세계 속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굴러 떨어진 왕은 마력을 채우기 위해 작은 새로 화하고, 전령은 그를 끌어안은 채 근처의 성으로 돌아간다.

2. 늙은 노인은 일본인이었다. 전쟁중 한국에 있었을 때 그는 일본인이라기보다는 한국인에 가까웠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는 배우였고 전후에도 그는 배우였다. 그 땅에서 찍었던 영화가 전쟁으로 중단되고그는 남은 인생을 일본에서 연극배우로 삼았고, 못찍은 그 영화를, 그 기억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다. 나이든 그가 그 땅에 다시 가게 된 것은 여든 살이 넘어서였다. 결혼도 하지 않은 그의 옆에는 같은 배우로 평생을 살았던 늙은 여성이 따라와주었다. 모든 것은 변해있었고 당시의 것은 무엇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노인은 흙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서럽게 울었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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