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낚스는 상냥해요


아니 정말로.
'이카리 신지 육성계획.' 신지군의 능력을 키운다는 점에서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꼭 빼어닮은 게임이죠. 게다가 풀 보이스. 예의 카오루x신지가 가능하다는 극악한 엔딩중 하나때문에 동인게임이라 불리기도 합니다(...)어 그런데 정말로 이거 동인 게임이에요. 공식에서 내주는 가장 큰 배려입니다. 별로 육성게임이라서거나 미연시삘이라거나 BL요소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이 게임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그거거든요.

"원하는 해답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마음껏 꿈꿔보세요, 자리 깔아줄게요.

저는 지금도 더블오의 엑시아땅을 꿈꿉니다. 세츠나의 2세요. 록온의 2세여도 좋고 그 둘다의 2세여도 좋아요. 검은 머리에 초록 눈동자에, 티에리아마마(파파)의 엄격한 교육과 주변에 산재한 천재들때문에 어린나이에 이미 모르는 게 없는 똑똑한 소녀고, 세츠나의 보물이자 라일의 꼬맹이 아가씨고 알렐루야에게는 소중한 아이인 그런 애가 있었으면 했어요. 저 앞으로도 구원받을 길 없는 소년및 청년들이 자기 아집과 상처에 파묻혀서 멍울진 가슴을 짊어지고 아등바등 웃으며 앞으로 나갈 길에 2세대 꼬맹이 하나를 등장시키는 거죠. 그런 꿈같은 거 꾸잖아요. 안 아팠으면 좋겠다. 좀더 즐거운 끝이면 좋겠어. 태공망이 언젠가의 미래에 선계에 복숭아 하나 물고 돌아오는 꿈이거나, 애쉬가 기적적으로 눈을 뜨는 꿈이거나, 케이건과 여름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나. 뭐 변수는 많지만 그런 꿈이요. 이 게임은 그 꿈을 제시해줬습니다. 그 것도 원작에 이어지는 루트로요.

신지군이 아주 잘 성장해서 흔들림없이, 자기 길을 찾고, 토우지를 상처입히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이해하고 앞으로 나갈 길을 찾으려고 애쓰면 정말로 그 길이 나타납니다. 겐도 사령관은 2세대의 아이들에게 인류보완계획의 진위를 알려주고, 아이들에게 미래를 정하는 법을 맡겨요. 카오루군의 정체가 알려질 때 신지는 그를 놓아보내줍니다. '나는 모두를 좋아해요. 카오루군을 좋아해. 카오루군도 나를 좋아해줬어.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상처입히는 세상은 원하지 않아.' 카오루와 신지는 서로 인사를 주고 받고 카오루는 떠나고, 레이는, 아스카는, 신지는, 토우지는, 켄스케는.. 에바에 타고 제레의 적들과 싸웁니다. 그리고 LCL의 바다보다는 훨씬 나은, 그런 미래를 만들죠. 

정말 말도 안되게 꿈같은 결말이죠. 그런데 이 게임의 분기 루트에는 그게 있어요.

더 나가볼까요? 이미 만화책으로 알려졌지만(웃음) 레이는 살짝 별난 오타쿠 소녀. 아스카는 신지의 소꿉친구. 미사토와 리츠코는 학교 선생님. 겐도 소장님은 인공진화연구소의 소장이자 팔불출 아버지에 극강 애처가. 카오루군은 다소 별난 독일에서 온 전학생. 어머니 이카리 유이는 해외출장을 나가있지만 가끔 국내로 돌아오는 다정다감한 어머니. 신지가 선택할 수 있는 세상 속에는 이런 꿈같은 세상도 있었습니다. 

우와, 진짜 상냥하지 않아요? 가이낙스. '2차창작을 해도 돼, 모른 척 꿈꿔도 돼'하고 멍석을 깔아준겁니다. 공식은 아니지만 비공식도 아니에요. 그걸 생각하면 기뻐집니다. 신지의, 레이의, 아스카의 마지막이 그런 게 아니라고 착각해도 좋을 공간을 만들어주다니. 가이낙스 나이스입니다.(웃음) 



나기사 카오루 육성계획은 아무리봐도 노리고 만들었지만(...) 게다가 결말도 찜찜했지만(...) 뭐랄까 신지가 변하지 않아도, 더 나은 인간이 되지 않아도 '이카리 신지'자체로 행복해지는 건 역시 나기사 카오루같이 인간을 넘어서는 애가 아니면 힘들지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지지하고 있습니다. 힘내 카오루군..!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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