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뇰라 엔 뮬카. 고대의 유적. 시간의 너머로 사라진 가장 현명한 사람들. 그들 중 가장 젊은 영혼. 그가 날개를 편 순간. 세상으로 날아갈 순간. 그가 보았던 세상. 넓고 신성하고 장엄하고 한없이 깨끗하고 친숙했던 땅. 당신의 눈으로 본 그 거대한 땅에 나도 압도당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당신은 그 세계의 주인이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3. 버려진 소녀. 마지막 입맞춤. 모든 것을 가진 그녀의 숙모. 반짝이던 장신구. 이름이 새겨진 트로피. 눈이 내린 땅. 비단 주머니. 혼자 남아서. 이건 이어지지 않을만큼 잊혀졌네요. 다 이을 수 있을까나.
4. 영화관. 흑백의 지지직거리는 화면에서 잘 차려입은 채 미소짓고 있던 그 시대의 여성다운 귀부인. 누군가가 그녀를 찔러 죽였죠. 흉기는 가위? 이어지는 살인은 현실에서. 도망쳤습니다. 기괴한 죽음. 살인. 비틀린 살육자들. 죽은 남자. 경비원. 와이어. 살해. 여기서 1번과 이어졌던가.
5. 검은 공주님. ‘나는 지나가다 들린 붉은 죽음이라오’ 그 건 그녀의 사촌쯤 되었을까? 새하얀 얼굴에 검은 베일을 드리우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요, 검고 짙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상복의 공주님. 그녀는 그 죽음과 함께 무덤 곁에서 서 있었어요. 애도도 슬픔도 표하지 않은 차가운 얼굴에 눈빛만이 검게 검게 물들어있었지요. 나의 새카만 공주님. 검고 짙은 죽음의 아가씨. 그녀의 입맞춤을 받아들인 남자가 붉은 죽음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의 팔에 안겨 관으로 실려가면서도 그는 만족스레 그녀에게 닿았던 순간의 감촉만을 껴안고 있었죠. 무덤으로 들어간 남자. 그녀는 죽은 남자의 시신에게 마지막 애도를 보냈어요. 검은 베일로 덮힌 남자의 입술. 두 번째이자 마지막인 입맞춤은 처음과 같은 온기는 조금도 없었지요. 애도도 슬픔도 없는 차가운 검은 공주님. 눈빛만이 슬프게 슬프게 가라앉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