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를 키운다. 어느 날 밤에 두 마리를 끈에 묶어 함께 잠든다. 몹시 더운 날이었다. 털가죽의 햄스터들은 더운 듯 약간 차가운 내 팔근처에 달라붙어 떠나려하지 않았다. 이모와 엄마가 함께 누운 큰 침대 위에서, 나는 햄스터들이 걱정되어 혹여 체온이 지나치게 떨어지지 않도록 큰 쿠션으로 바람막이를 세웠다. 이모가 덥다며 짜증을 낸다. 쿠션을 달라는 이모의 말에 당치도 않다며 나는 고개를 흔든다. 결국, 햄스터들을 내보내게 된다.
거실 구석에 놓여있는 햄스터우리는 너무 작고, 칸이 나누어진 우리의 다른 쪽에는 더러운 물이 꽉 차있고 이끼같은 게 자라고 있다. 한숨을 쉬며 우리안에 햄스터들을 풀어준다. 우리 안의 햄스터들은 조금 당황한 듯 이 새로운 가족을 보더니, 이내 익숙한 햄스터라는 것을 확인하고 공격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작다. 안에 먹이를 부어주자 바둥거리며 몰려드는 작은 햄스터들. 물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햄스터 전용 물보급기를 대주지만 고장난 그 것에서는 마구 물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전부 젖어버렸다. 이래서는 안돼. 한숨이 나온다. 견디다못해 큰 우리를 뒤져서 가지고 나온다. 그 안으로 작은 우리의 아이들을 옮긴다. 밤의 어둠 속에서 그런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예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아침에 그 소녀가 발견된 곳은 화장실의 욕조 안이었다. 교복차림의 소녀는 욕조 안에 기대어 앉은 채 자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고 했다. 욕조를 빨갛게 물든 피는 어디서 배어나온 것인지, 잔인한 만큼 참혹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붉은 물 속에서 흔들리는 소녀의 머리카락과 붉은 물이 든 새하얀 교복 와이셔츠. 소녀는 이미 숨이 멈추어있었다. 가정집에서 일어난 그 기묘한 살인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소녀가 죽은 날, 집에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는 사람의 소행 아닐까'라는 흐릿한 추측이 그 살인사건의 전부였다.
10여년 전에 일어난 그 사건의 소녀는, 나의 고모다. 채 피기도 전에 살해당한 아빠의 여동생. 거기까지 생각하며 나는 햄스터들을 옮긴 우리를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새벽공기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온다. 약간 밝아진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섰다. 물에 젖어있는 햄스터들을 씻기고 오물들을 버리기 위해. 포도송이가 우리 안에 떨어져있다. 젖은 햄스터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햄스터들이 죽을까봐 조바심이 난다. 세면대의 구멍을 반쯤 막고 물을 쏟아 버린다. 이제 햄스터들은 빠져죽지 않는다. 겨우 안심을 하고, 그제서야 불을 켜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그 때 퐁당,하고 소리가 난다. 언제 저쪽에 있었던 걸까. 내가 본 것은 어두침침한 가운데 새하얀 욕조 안으로 굴러떨어지는 검고 동그란 물체다. 햄스터인 걸까. 무섭다. 욕조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 때 무언가와 부딪힌다. 교복을 입고 있다. 젖은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다. 비명을 질렀다.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물에 붉은 기가 아스라하게 돌고 있어 숨이 멈출만큼 무섭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안돼. 물 속에 햄스터가 빠져있을지도 몰라. 어떡하지. 눈물이 솟는다. 욕조안의 소녀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다. '...언니....?' 무척이나 잠에 취한 목소리다. 이 아이는.. 내 고모가 아니다. 사촌 여동생이다. 찬물을 맞기라도 한 듯 머리 속이 냉정해졌다. 불을 켰다. 그 애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욕조 안에서 움직이려했다. 약에 취한 듯 행동이 느리다. 그 때, 나는 욕조 한켠에 놓인 샴푸병들 사이에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손잡이에 녹이 슨 면도칼이다. ..하지만, 날만큼은 몹시도 날카롭다. 나는 비명을 질러 식구들을 깨웠다. 잠에 취해 사람들이 걸어오고, 상황을 보고 경찰을 부른다. 살인범이 내 동생을 죽이기 직전에, 나는 그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간 것이다. 그 어둠 속에 살인범이 서 있었을까. 나는 햄스터들이 걱정되어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한 덕분에 살아난건지도 모른다.
아, 다행히도 욕조 속에서 발견된 것은 포도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