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저는 어린 시절 액땜을 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부인...! 내가 바로 그자요..!!'
사내는 침통하기까지한 어조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美笑>
흠, 흠, 흠, 흠...
깊고 깊은 달밤. 촛불하나 켜지지 않은 신방에서 그녀는 나즈막한 콧노래를 부르며 경첩을 들여다보았다. 장짓문 너머로 새어들어오는 한줌의 푸른 달빛을 빛삼아 바라보는 거울 속 그녀의 입술은 붉디 붉었다. 그녀는 새하얀 손을 들어 오른쪽부터 천천히 얼굴을 쓰다듬었다. 곱고 하얀 이마, 단아한 아미, 검고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 비단결처럼 고운 뺨. 부드러운 입술. 작은 턱. 어느 누구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며 할멈은 죽기 전까지 울었다.
그녀는 왼쪽 뺨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와닿는 두껍고 커다란 흉터. 주위의 살을 움푹 눌러놓으며 흉하게 번진 그 것. 뺨은 물론이고 왼쪽눈을 거쳐 이마에까지 올라가있는 깊은 검상.
아름다운 것은 반쪽의 얼굴뿐이다.
이 상처가 처음 생겼던 것이 몇 살때였는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몰락한 집안의 종이던 여인의 등에 업혀 잠들던 것이 일과였던 어린 시절이었다. 자신이 양반가의 딸이라는 것도 세도있는 집안이었다는 것도 아무 상관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저 마룻터에서 놀고 방안에서 잠드는 그런 나날.
그 나날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어느 깊은 밤.
여행객이라며 묵었던 사내는 어린 아이였던 그녀의 얼굴에 칼을 꽂고 사라졌다.
고통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얼굴의 반쪽이 불에 델 것처럼 뜨거웠고, 성한 오른쪽 눈으로 붉은 것이 왈칵왈칵 밀려오는 것을 보며 공포에 질려 비명을 토해냈다. 그 것이 그녀가 가진 그 날의 기억이었고, 그 이후 그녀는 한달을 열에 들떠 앓았다. 천으로 감은 얼굴을 하고 자리에 일어나 앉은 날, 죽을 상처였다며 의원은 혀를 찼다. 어린 그녀는 그 의미를 몰랐다. 욱신거리는 상처의 고통만이 어지럽게 남아있었다.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은 천에 감겨있어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천을 풀던 날.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자리잡은 지옥을 보았다.
얼기설기 붙어있는 붉은 살점과 그 상처에 잠식당한 얼굴을 보며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어린 아이의 비명에 목놓아 울던 종은 그녀가 양반가의 딸이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거라했다. 몰락한 집안을 아직도 노리는 자객이 찾아들어와 애기씨를 해한 것이라고. 목숨만은 살아서 다행이라 울고 또 우는 늙은 종 앞에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었다. 아름다워져갔다.
반쪽만이.
얼굴에 자리잡은 상처는 그녀가 여인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제 아무리 바느질 솜씨가 곱고 글을 잘 쓰며 옆태가 단아하다한들 그 누구도 그녀를 여자로서 취급하지 않았다. 얼굴에 흉하게 상처가 있는 그런 여자를 누가- 비웃음이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왔고 종이 죽은 이후부터 삯바느질로 나날을 보내는 그녀를 누구도 좋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새 원님이 온 일도 몰랐다. 그 원님이 혼인한 상대가 매 밤마다 죽어나간다던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네 명의 여인이 죽고나서 사람들은 그녀를 원님 앞으로 데려갔다.
'어린시절에 액땜을 했으니, 뭐가 있든 죽지 않을 거 아니냐'
그 말의 이면에는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의미도 들어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표정한번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방에서 그녀의 얼굴을 본 남자는 그대로 굳었다. 올해로 마흔이 된다던 그 남자에게 신랑의 옷이 어울리지 않았던 건 나이탓이 아니라 경악으로 굳은 얼굴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가 놀라는 이유를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담담히 설명했다. 어린시절, 괴한에게 당해 이리되었다고. 그녀는 눈가에 얼음처럼 차가운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슬픔이나 미안함등의 고운 감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수그리고 사죄하는 남자.
'미안하오, 미안하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는 건지 그녀는 이유를 몰랐다. 그리고 남자는 흐느껴 울며 고백했다.
'내가 그 괴한이었소'
그 한마디에 그녀는 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놀란 눈을 보고 남자는 더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믿을 수 없는 말들. 16년전의 그 날, 길가에서 들은 말을 그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했다.
'나는 그 어린애가 자신의 반쪽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던 거요'
그래서 그는 그 어린아이에게 칼을 꽂았다. 그리고 그 이후 결혼하는 여인은 전부 죽었다. 뒤늦게서야 그 길거리에서의 일을 생각하고 한탄했지만 어쩔 수 없엇다 한다. 그 모습 앞에서 달리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마냥 무거운 신부의상에 파묻힌 손을 들어 사내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지만 그녀의 새하얀 섬섬옥수가 뺨에 와닿자 크흑, 하고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그가 여인의 족두리를 벗겼다. 연지곤지 찍은 뺨을 가엾다는 듯 쓰다듬었다. 비단천이 올올히 겹쳐진 옷고름을 풀었다. 화려한 붉은 빛과 푸른 빛의 비단 옷도 사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옆에 깔린 이부자리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비쳐든 그림자에 가린 이부자리 위에 누운 사내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머리를 가다듬던 손을 멈추고 사내쪽을 바라보았다. 숨소리도 없이 누워있는 그를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소복차림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달빛이 가득한 마당에는 개미새끼 한마리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조용한 걸음으로 그 빛이 가득한 곳을 가로질렀다. 뒤꼍에 준비된 목욕통에는 뜨거운 물이 담겨있었다. 시중을 들어줄 하인은 없었다. 다섯번째의 여인이 죽어나갈지 모르는 이 밤에 남아있을 정도로 강한 심장의 하인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개의치않고 옷을 벗었다. 달빛을 받은 몸을 그녀는 뜨거운 물 속에 담갔다.
흠, 흠, 흠...
김이오르는 물속에서 몸을 문지르며 그녀는 방금 전 사내가 한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사내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자신을 생각했다. 용서받았다는 얼굴로 조심스레 그녀에게 손을 대던 사내를 생각했다. 사내를 가만히 품에 안았던 자신을 생각했다. 안도하듯 그 손길을 받아들이던 사내를 생각했다.
그리고 품에 안은 사내의 뒷 목에 머리에서 풀러낸 비녀를 박아넣던 자신을 생각했다.
물안개처럼, 자잘한 핏방울들이 푸욱,하고 박아넣은 살점부터 공기중으로 튀어나왔다. 자신의 목에 박힌 비녀를 믿을 수없다는 듯 올려다보던 사내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부풀어있었다. 그녀는 무심한 얼굴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통은 없으시겠지요. "
느릿하고 평온한 어조로 말한 그 한마디가, 사내가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단어였다. 그는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새하얀 손으로 그 몸을 안아 이부자리에 뉘었다. 비녀가 막고 있는 탓에 피는 거의 나지 않았다. 최초의 그 것이 전부였다.
".....저 역시 단도가 얼굴을 찍어내리던 순간 고통은 느끼지 못했으니."
그 죽은 눈을 가만히 감기며, 그녀가 속삭였다.
흠,흠,흠,흠...
여인의 나직한 콧소리가 물기 서린 공기에 섞여 달이 가득찬 밤하늘로 타고 올랐다. 길고 긴 삼단같은 머리카락. 뜨겁게 데운 물 속에 넓게 퍼져 하늘거리는 그 것을 젖은 손가락으로 감아올리며 여인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손끝에 희미하게 묻어있었던 핏방울도 뜨거운 물 속에서 스러져버리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는 무심한 눈에 회상을 담았다.
'나는 그 어린애가 자신의 반쪽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던 거요'
나 역시 바라지도 않았다.
사과하며 고개를 조아리던 남자는 모르고 있었다. 그 상처의 이후, 그녀가 어떤 삶은 살았는지. 조용히 살았다. 조용히 지냈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일도 없었고 손끝을 움직여 만든 일감을 가져다주러가거나 음식을 사러갈 때가 아니면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천을 내려가린 얼굴을 보며 노골적으로 혐오하거나 동정의 표시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녀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그렇게 조용히 살아야했다. 지내야했다.
그는 찰나의 순간이라도 느꼈을까?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야했는지?
아이를 찌른 가책도 없이 과거에 급제하고, 마을에 부임하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살던 그 모든 시간동안? 그가 죽도록 행복하게 살던 떄에 그녀는 죽도록 고요히 살았다. 품안의 은장도를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고 혐오의 감정 앞에 고개를 돌리고 동정의 감정앞에서 치욕을 감춰야했다. 그 떄 얼굴이 아니라 가슴을 찔러주었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하며 손톱이 갈라지도록 가슴을 눌렀다.
그 모든 세월을, 모든 흔적을, 고개를 수그린 것만으로 용서하리라 생각했나.
그녀는 자신의 이전에 죽었다는 네 명의 여인들을 떠올렸다. 원님에게 시집간다는 사실에 행복하게 머리를 올렸을 아가씨들과, 죽어나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거역할 수 없어 신방에 들었을 아가씨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죽었다. 그 자신이 아닌 그 곁에 앉은 사내 탓에. 그의 업보 탓에.
애초부터, 그가 죽었으면 끝날 일을.
흠, 흠, 흠....
새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않는 깊은 밤에. 찰랑이는 물소리가 반주처럼 콧소리에 섞여들어왔다. 뜨거운 물속에서도 여인의 옥같이 하얀 피부는 열조차 오르지 않았다. 눈같이 희디흰 가슴께에 물을 끼얹으며 그녀는 나지막히 웃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fin.
원본은 초등학교때 읽은 설화.
저라면 제 인생을 흙발로 짓밟은 남자를 용서했을 것같진 않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