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째.
당연한 이야기지만 갑작스레 우주로 방출된 수송선에 별다른 보호장치같은 건 없었다. 그 것이 부족한 식량과 줄어가는 에너지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별의 무리와 마주쳤을 때 선함은 이미 5분의 2가 부서져나간 상태였다.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잘려나간 1번실은 외부와의 기압차로 패쇄되었다. 1번실에 있던 20여명의 아이들은 죽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때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중앙제어시스템이 거기에 7명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표시했다. 필사적이기보다는 담담했다는 것이 그 때의 감상이었다. 남아있는 34명의 아이들은 그 7명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압차로 일그러진 방안에서 미약하게 남아있을 산소에 의지한 채 천천히 죽어가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구하러 가는 사람은 없었다.
48일째.
네 번째 소행성대를 지나쳤을 때 제어 시스템은 크게 부서졌다. \는 절반가까이 파손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19명으로 줄어있었다. 남아있는 부분은 아직 외부와 차단된 상태였지만 파손된 제어 시스템은 거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61일째.
제어시스템이 기능이 완전히 멈추었다. 내부에서는 불빛이 사라졌다. 전력이 한계를 알려온 것이다. 반쯤 부서진 상태로도 어떻게든 이어가고 있었던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사실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열 두 살짜리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반신은 예전보다 훨씬 눈물이 많아졌다. 그 등뒤에 서서, 고개를 숙여 우는 그의 목덜미에 남아있는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포를 떼어내고 표본을 추출하고. 엉망진창으로 당했던 그 몸을 보다가 팔을 뻗어 끌어안아주었다. 그 게 더 서러웠는지 품안에서 반신은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전신에 남은 상처. 괴로운 기억. 실험의 연장. 기계에 묶여 멍한 눈으로 ‘표본’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눈물이 고여 툭, 하고 떨어지던 그 눈동자. ..유일하게 지키고 싶어지는 대상이었고, 유일하게 지켜야하는 대상이었다.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79일째.
보조로 작동하고 있던 시스템이 멈추었다. 길게 버틴 것이었지만 보조기능마저 멈추었다는 건 항내의 순환 시스템의 완전한 정지를 의미했다. 무중력 상태에서 배의 진로 변경은 불가능해졌다. 더 큰 문제는 순환 시스템의 정지였다. 내부의 산소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았다. 다행히 예비로 놓아두었던 산소 봄베들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충분한 양이었지만 더 이상 남아있는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는 힘들어졌다.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93일째.
더 이상 분산될 수 없게 된 아이들은 부족한 식량을 나누어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실험체에 불과하던 사람들끼리 유대감같은 것이 태어나고 있었다. 나는 외부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 것은 나에게 맞지 않았으므로. 반신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남은 인원이 모두 둘러앉았지만 사실 이야기 할 것은 없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일반인의 일상을 가져본 사람은 누구도 없었기에. 그 와중에서도 내 반신은 그나마 이야기할 만한 것을 갖고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던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우리들과 다르게 아이는 이 곳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함께 오지 못했다고 고개를 수그린 반신에게 누군가가 그 애는 아직 처분 안된 게 아니냐는 위로가 따라왔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반신은 웃었다. 공기가 기묘했다. 거기에는 일종의 체념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억눌린 우울 위에서 모두는 같은 것을 끌어안고 있었다. 살아남은 마리. 그 이름에 어떠한 동경같은 것이 붙여졌다. 그리고 모두는 그렇게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다. 목 뒤에 남은 상처나 뜯겨져나갔던 표피같은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어도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절망감이 물든 그 장소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선함이 라그랑쥬 제 3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진출한 콜로니가 곳곳에 있는 그 곳에서는 구조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때까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112일째.
여섯 번째인가의 소행성대를 지나쳤다. 다행히 큰 파손은 없었지만 두 번째로 부딪힌 소행성이 8번실을 완전히 부수었다. 세 명이 죽었지만 더 큰 문제는 산소봄베의 대부분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열 네명의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그 것은 식량보다도 더 확실한 죽음이었다.
124일째.
사람이 죽었다. 그 것도 둘. 자살이었다. 실험실에서도 항상 함께 했던 그들의 이름은 R-17과 R-18번이었다. R17번. 붉은 머리카락에 초록눈동자. 염색체는 XX. 함께 있었던 18번. 까만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염색체는 XY. 그 둘은 같은 유전자로 만들어진 남매였다. 17번이 유전자 조합차원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처분된다는 판정을 받은 날 18번은 연구원의 귀를 물어뜯었다고 했다. 위험한 개체이므로 처분한다는 명령이 상부에서 내려왔을 때 18번은 17번을 꼭 끌어안았다고도 했다. 같은 배로 처분되게 된 것은 누군가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함께 이 곳에 왔고 더 이상 이 곳이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함께 있는 쪽을 택했다. 그들은 패쇄된 1번실 쪽으로 가서 부서진 틈으로 뛰어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흘러가는 선함의 창문으로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붙어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무중력의 공간 속에서 새하얀 옷 한 벌 외에 전혀 장비를 입지 않은 그들은 마치 환상같았다. 아마 금방 산소 부족에 빠졌으리라. 나나와 하치. 그들이 서로를 부르던 이름을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 것은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라지는 그들을 보고 누군가는 또 울었던 것도 같다.
128일째.
남아있는 열 두명 사이에서 흐르던 안온한 공기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는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산소 봄베가 소실된 이후 실내에서는 다들 자신 몫의 공기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남아있는 것은 너무나도 적었다. 적었다.
......적었다.
139일째
하아..하아..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이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목 안쪽이 꽉 막혀버린 것처럼 메어왔다. 흘러내리는 눈물로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전신히 흠뻑 젖어있었다. 어두웠는데도, 어두웠는데도 손에 묻어있는 그 끈적한 것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 재대로 숨쉬어, 알렐루야.
"..하..할렐루야.."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반신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목이 메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산소 봄베에서 손을 떼려 했지만 그의 의식이 장악한 오른 팔은 그 것을 입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저항하다가 힘없이 내린 손끝에 젖어있는 바닥이 만져졌다. 그 바닥을 적시고 있는 것은, 그 것은.. 알렐루야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왼손 끝에 무언가가 닿는 감촉에 알렐루야는 거세게 몸을 떨었다. 너무 지독해서 역으로 희미하기까지한 혈향이 맴돌았다. 숨을 몰아쉬며 알렐루야는 흐느꼈다. 그 소리가 듣기 힘다는 듯 할렐루야는 자신의 손으로 알렐루야의 눈을 덮어 가렸다.. 그 손 또한 미끈미끈하게 젖어있었다. 그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 ..보지 마.
할렐루야의 목소리가 그렇게 조용하게 울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 것은 알렐루에게 있어서 최초의 살인이었음이 분명했다. 실험실에서 그가 죽였던 연구원은 죽어도 싼 사람이었다. 할렐루야는 그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고 씹어 뱉듯 말했었다. 그러나 이번은, 더 없이 이기적인 판단으로 움직인 이번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아이들이 생각나 알렐루야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 것을 눈치챘는지 할렐루야가 다시금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보지 않아도 돼, 알렐루야.
듣지마. 생각하지마. 아무 것도 생각하지마. 너는 도망쳐도 돼. 지금만큼은. 지금만큼은 아무 것도 보지 않아도 돼. 네가 도피하기 위해서 내가 움직인 거니까. 그렇지않았다면 너는 네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할렐루야는 알렐루야를 조용히 감싸안았다. 실험 후에 울던 알렐루야에게 그가 그렇게 언제나 해주었던 것처럼. 그 것은 공격적인 할렐루야가 유일하게 유순한 성향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으며 그의 반신인 알렐루야에게는 하루 중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때 그랬던 것처럼 할렐루야는 조용히 그를 달랬다.
아무 것도 보지 않아도 돼.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
그냥, 지금은, 이렇게.
- 숨 쉬어.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살아남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게. 그냥,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금만큼은.
여기 있어줘. 알렐루야.
--표류선이 구출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여일 후였다.
FIN.
본격적으로 뻔뻔해지기 위해 예전에 썼던 것들을 털어내봅니다.
2기가 나오기 전, 알렐루야가 탈주했다는 것만 들었을 때 쓱쓱 써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