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영혼의 터럭이라지요.
그렇게 말한 여자는 입술 끝으로만 가만히 웃었다. 호롱불 아래 희미하게 드러난 새하얀 목선이 더없이 희었다. 푸른 빛이 서늘하게 흐르는 창백한 뺨에 어여쁜 미소를 짓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싸늘하고 맑은 시선이, 비웃는 듯한 입꼬리가 밤에 물든 듯 요염했다. 살짝 고개를 들자 검푸른 머리카락은 젖은 듯이 매끄럽게 흔들렸다. 불빛에 비친 그 목덜미가 더없이 천박했다. 우아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버릴 만큼. 그녀는 눈꼬리를 가늘게 뜨며 비웃었다.
- 당신은 여전히 계집의 손끝을 두려워하십니까.
여성의 것답지 않게 갈라진 낮은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기묘한 빛을 띄고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해 애써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허나 어린애가 손을 내젓는 것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은 연약한 부정이었다. 다 꿰뚫어보았다는 양 그녀는 더없이 다정한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바닥을 스치며 천천히 움직이는 옷자락은 흡사 매끄러운 뱀을 떠올리게 했다.
- 어리신 분. 당신은 아직도 나를 두려워하십니까.
- 그렇지 않다. 나는.. 나는..
- 당신의 아버지도 그러하셨습니다.
- 아니야. 나는.
- 이 키요는 이제 어디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러합니까.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하얗게 떠오른 여인의 손이 눈앞에 다가왔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뺨 언저리에 닿았다. 체온이 없는 시체처럼 그녀의 살갗은 차가웠다. 두려움이 전신을 스쳤으나 나는 몸을 뒤로 빼지도 못했다.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가여운 것을 바라보는 듯, 애원하는 듯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흐트러진 옷긴 사이로 드러난 그 목덜미가 눈이 시릴만큼 희었다. 보아서는 안된다 생각할 정도로. 그러나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뺨에 닿은 싸늘한 손, 달빛에 드러난 하얀 피부, 열에 들뜬 얼굴.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그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만이 죽은 자의 것처럼 되풀이되었다. 반복되었다.
- 저는 영원히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합니다.
- ..키요.
- ..가지 못합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녀는 손을 거두었다. 고개 숙인 입가가 자조하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가여웠다. 무서웠다. 아름다웠다. 옷자락으로 입끝을 가린 채 자신을 저주하는 여자는 세상의 것이 아닌 양 신비했다. 밤에 휩싸여 녹아버릴 듯 그러했다. 차라리 시선을 돌려버릴 수 있다면. 이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이성을 따르지 못했다. 그저 그 모습에 홀리듯이 중얼거렸다.
- ..내...내가 자네를 놓아준다면, 자네는 떠나줄 텐가?
떨리는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마냥 어두운 방안에 퍼졌다. 소리죽여 웃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놀란 듯한 눈동자가 더없이 맑다고, 순간 생각했다. 한순간 그녀를 놓아주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후회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를 비웃듯이 소녀의 것처럼 맑던 눈동자는 다시금 밤처럼 짙은 빛을 띄었다.
- 아니요, 아니요. ..아닙니다.
- 키요.
- 키요는 또다시 저의 나비를 죽이러 갈 겁니다.
- 키요. 자네는.
- 그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여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뱀처럼 독한 눈을 하고 아이처럼 차게 웃었다. 갈라져 쉰 낮은 목소리는 과거 그 목소리가 목놓아 불렀던 저주의 이름을 가만히 되뇌었다. 가슴 한 구석이 눅진하게 아파왔다. 여인은 아름답게 웃었다. 움직일 수 없는 두 발목에 매어진 차가운 금속이 달빛에 비추어 은빛으로 빛났다. 눈을 가늘게 뜬 그녀는 자신을 가둔 감옥의 창살을 애무하듯이 어루만졌다. 성큼 다가온 붉은 입술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맺혔다.
- ...뱀의
- 뱀의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비늘을 가다듬어
농익은 목소리를 따라 한순간 차게 내려앉았던 밤 공기 사이로 들뜬 열기가 피어올라 춤추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촉촉한 열이 배었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움츠러드는 자신을 끄집어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애쓰며 갇혀있는 독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은 채 창살에서 손을 떼었다. 자신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짓이 연인을 어루만지는 그것처럼 농밀했다. 밀어를 속삭이듯 그녀는 저주를 토했다. 자신마저 태워버린 연모의 정을 쏟아냈다.
- 키요의 나비를 잡으러 갈 것입니다.
수천번 반복했던 그 목소리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꽃처럼 짙게짙게 타올랐다. 먼 곳을 보는 그녀의 눈빛이 처연하게 빛났다. 그녀의 곁에서 사그라든 호롱불이 위태롭게 흔들리다 꺼졌다. 뒷걸음질치던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호롱불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쪽창을 타고 하얀 달빛이 스미어 그녀를 적시었다. 밤의 달 아래서 떠오른 그 창백한 얼굴은 고요하게 웃었다.
독기서린 그 미소가, 푸른 달빛에 비쳐 더없이 아름다웠다.
fin.
응, 이런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