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도 나이를 먹으면 마마만큼 커질 수 있을까?"
세 살 생일날에 그렇게 묻자 할머니는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이지, 내 예쁜 아기! 쾌활하게 웃는 할머니의 얼굴은 정말 예뻤다. 세상에서 두번째로 할머니가 좋다고 하니까 할머니는 더더욱 기쁜 듯 웃었다. 나도 까르륵 웃었다.
"그런데 에이프릴, 첫번째로 좋은 사람은 누구니?"
"당연하잖아, 마마!"
"어머! 미카엘라가 정말 기뻐하겠는데?"
"미카엘라? 파파말하는 거야?"
"..파파?"
"나는 마마가 제일 좋아!"
만 세살, 정확히 36개월된 어린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할머니의 미소는 조금 굳었고, 조금 후에 돌아온 할아버지가 에이프릴의 마마가 누구인지 설명하자 조금 더 굳었다. 할머니의 얼굴이 굳거나 말거나, 나는 열심히 발가락과 손가락을 비교해보면서 마마만큼 커지는 그 날을 상상했다. 그런데 그러러면 나도 오일을 먹어야하나. 밥만 잘 먹으면 되나.
나중에 마마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마마는 조금 난처한 듯 푸른 눈을 깜빡이고 웃었다.
아이언하이드는 모처럼만에 만난 오토봇 동료들 사이에 끼어 즐거웠다. 레녹스의 막내딸이 얼마나 개구쟁이인지 떠들고 자기 뒷 트럭자리에 모래성 쌓기를 하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린 이야기같은 걸 주섬주섬 늘어놓는 동안 라쳇은 뭐라뭐라 불만을 쏟아내었고 범블비는 라디오 볼륨을 최대로 가득 [누가 이 딸내미바보를 데려가요]를 반복재생했다. 그래봤자 이야기가 샘 윗위키의 큰 딸이자 올해 일곱살이 되는 에이프릴 윗위키로 넘어간 순간에 라쳇도 범블비도 순식간에 딸내미바보 둘로 탈바꿈해버렸지만. 라쳇이 옵틱 아이를 빛내며 에이프릴의 일대기를 첫 울음소리부터 일곱살때까지에 걸쳐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동안 범블비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는 나의 여신이죠]를 BGM으로 깔았다. (아무래도 천재인 듯하고 노래를 세상에서 제일 잘 부르며 미카엘라를 쏙 빼닮은 미녀가 될 것이 틀림없다는 대목에 이르는 순간, 아이언하이드는 앞으로 남들 앞에서 자랑을 적당히 하자고 좀 반성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중턱에 도달했을 때에, 아이언하이드는 어이가 없어져 중얼거렸다.
[마마?]
[아, 옵티머스를 말하는 거야.]
[.......엑?]
[옵티머스는 마마, 미카엘라는 파파. 주디와 론은 재대로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어째서야? 샘은?]
[샘은 그냥 샘.]
[하아?]
[샘은 좀처럼 집에 못 와서 그런 거 아닐까.]
어깨를 으쓱해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라쳇을 보며 아이언하이드는 조금 벙쪄서 손가락끝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기기깅, 금속성의 소리가 울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라쳇은 자신이 아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Mather의 이미지를 연관시켜보았다. 확실히 옵티머스는 자애로운 지도자였고 현명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아이언하이드는 디셉디콘과의 전쟁을 떠올렸다. 가장 현명한 지도자이며 가장 명석한 주군이었던 오토봇의 리더는 동시에 가장 뛰어나고, 가장 잔혹해질 수 있는 전쟁의 명수였다. 흠하나없는 옵틱 아이를 무심한 푸른빛으로 빛내며 차례차례 눈 앞의 적들을 살해하는 그 모습은 죽음의 신처럼 빛났다. 그런 그가.
[........안 어울리는데.]
[그렇지만도 않아.]
<세상은 평화로워졌다네, 친구.>
라디오드라마의 그럴싸하게 합성된 성우의 목소리가-범블비는 잘 움직이지 않는 보이스 체인져를 고치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나왔다. 아이언하이드는 얼이빠져서 그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라쳇은 웃으며 다시 에이프릴 자랑을 늘어놓았다.
일곱 살의 여름, 미카엘라 엄마-최근 호칭을 교정받았다-는 나에게 기본적인 세가지를 알려주었다. 변태를 만나면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도망갈 것, 예쁘다고 접근해오는 녀석들은 반드시 부모나, 어른에게 보고할 것, 자동차를 분해하는 것은 어른이 있을 때 할 것. 마지막 교육이야 안 지킬 걸 엄마도 알고 있었으니까 상관없었지만, 앞의 두개는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카엘라 엄마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세상의 나쁜 사람들과, 위험성. 충격먹고 차고로 도망쳤다. 차고에서 클래식을 듣고 있던 옵티머스는 나를 보고 놀라 음악을 멈추었다. 나는 울음을 터트리며 좌석으로 기어올라갔다.
"..그렇대요, 옵티머스."
[..그녀는 옳은 말을 했어. 위험한 사람들은 너를 해칠 수 있단다.]
"하지만 내가 여자가 아니면 되는 거 아니야?"
[가리지 않는 사람도 있어.]
"옵티머스도 엄마랑 아빠가 있어?"
[나는 인간들과는 달라, 엘.]
"..그렇구나."
좌석을 쓰다듬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침대도 있다. 그 곳에서 자는 것이 좋았다. 차체 전반을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자장가. 때로는 그 것을 대신하는 옵티머스의 목소리. 언제나 다정하고 부드럽고 상냥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커다랗고 다정한 트럭은 나를 소중히 아껴주었다. 차체, 유리창, 좌석, 핸들, 하다못해 와이퍼 하나까지도. 조그마한 아이의 본능으로도 알 수 있을만큼 이 곳은 안전했다. 로봇으로 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기계의 손이, 다정한 푸른 눈동자가, 무겁고 한없이 부드럽고 서늘한 금속이 나를 지켜주고 안아주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보호하고, 키우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말한다면 그는 확실한 나의 어머니였다. 그는 절대로 나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완전한 나의 어머니였고, 나의 요람이었다. 그 다정한 장소에서, 그의 한가운데에서 깨달았다.
나는 옵티머스처럼 될 수는 없구나.
나즈막히 중얼거리고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드러누운 시트는 여전히 옵티머스의 눈빛처럼 안온했다.
'나는 옵티머스처럼 될 수는 없구나.'
중얼거리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옵티머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에이프릴의 목소리는 언제나 밝았지만, 이 때만큼은 조용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정의를 수호하는 프라임에게 있어 여리고 작은 것들은 언제나 보호의 대상이었고, 보호의 대상인 인간들 가운데서도 이 어린아이는 특별했다. 겨우 기어다니는 어린아이일 때부터 아이는 자신의 차체를 기어다녔다. 시트에 드러누워 잠을 잤고 침대에 기대어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재잘거렸다. 천진하게 웃는 이 아이는 그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스스럼없이 옵티머스의 친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자신에게 온전히 순수한 믿음을 보내는 이 작은 소녀는 어느 덧 옵티머스의 일상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저 아이는 처음으로 옵티머스가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옵티머스는 그 것을 부정해줄 수 없었다. 인간들의 수명은 짧다. 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은, 그리고 자신을 떠나는 것은 머지 않은 일이었다. 그 자연의 섭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프라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애착을 준 대상이 떠날 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옵티머스도 있었다. 그래서 옵티머스 프라임은 조용히 침묵했다. 내부에 울리는 아이의 나직한 울음소리는 곧 지쳐잠든 숨소리로 바뀌었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옵티머스는 문득 멀어진 친우를 생각했다. 영원을 함께했고 함께 하리라 믿었던 그는 어느 순간 어깨를 나란히하고 걷는 평행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대척점이 되어있었다. 위대한 의지에 따라 함께하도록 만들어진 그와의 연결도 시간 속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하물며 이 조그만 아이와는.
- 그래도, 나는 계속 네 곁에 있으마, 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도 내지 않고 되뇌인 말은 진실이었다.
옵티머스는 조용히 신체 일부를 변형해 침대에 놓인 시트를 끌어 아이의 작은 몸 위에 덮어주었다. 눈물꼬리를 매달고 잠든 조그만 인간의 아이는 무척이나 덧없어보였다. 변화 또한 순식간에 찾아오겠지. 하지만 그렇다해도, 지금 이 순간 옵티머스의 내부에서 눈을 감고 있는 어린아이는 옵티머스를 온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에이프릴 윗위키는 옵티머스의 일부였다.
fin.
그 언젠가 에이프릴 윗위키의 뒷 이야기. 2편 보고 왔습니다.
옵티머스는 지도자이며 전사, 전사이며 지도자. 어느 쪽일까요?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