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늘 굼뜨다고 혼나던 막내였다. 길을 잘못 들기 일쑤였고 작전명도 매번 까먹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지금은 머리가 맑았다. 언제나 사고만 친다고 혀를 끌끌 차던 갑수 형님, 보라고요. 나도 머리 굴릴 줄 알아요.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다. 주위를 돌아보려다 첫 총격전에서 그 쓰러트려도 쓰러지지 않을 것같던 갑수 형님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을 봤던 기억이 났다. 아아, 바보. 난 이래서 안돼. 확 기운이 사라지려는 것을 애써 다독였다. 실망하고 우는 건 다음에 해도 돼.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고.
이 사람이다.
머뭇거려 움직이지 못하는 굳은 눈을 향해, 그이는 다시금 일그러진 얼굴로나마 미소를 만들어보였다. 웃고 있는 그의 한쪽 다리는 이미 형체가 남아있지 않다. 얼굴을 적신 피는 다리에서 흐른 것도 아니었다. 이마에 남은 칼자국은 독하게 깊어 찢겨진 살가죽 안으로 뭉개지다시피한 흰 뼈가 보였다.
‘성님. 가유.’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고 손을 놓을 줄 모르는 남자를 보고 그는 겨우겨우 오른 팔을 들어올렸다. 뒤틀린 팔이 뺨을 쓸어넘기려는 몸짓이 아무래도 어색했던 것은 손가락 끝이 전부 너덜너덜하게 부러지고 잘려나간 탓이었다. 새끼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반쯤 잘려나가 죽은 살덩이가 엉겨붙은듯한 다른 손가락들은 이제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것이 위험의 신호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의식이 흐려왔다. 그래도 남은 힘을 모아, 대답을 잃은 채 자신을 응시하는 남자에게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성님, 어여 가유.’
목소리가 얼마나 분명하게 들렸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왈칵왈칵한 핏덩이가 소리를 막았다. 그래도 알아들어주기를 바랬다. 말 한 필에 사내 둘이 타고 아직도 이 근처에 산재해있을 자들을 피해 도망치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하물며 자신의 몸은 이미 충격을 견딜만한 상태가 아니다. ..아니,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머리가 굼뜬 자신도 이렇게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성님은 뭘 망설이고 있는 걸까.
쿨럭.
기침과 함께 목에서 피거품이 끓었다. 언뜻 굳은 듯 보였던 남자가 확 놀라며 어깨를 받쳐들었다. 그 순간에 자신은 어깨를 잡는 그 팔을 쳐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남아있었을까. 부러진 손가락들 사이에서 왈칵 튄 피가 촥 튀어 그의 뺨과 윗옷에 핏줄기를 그렸다. 우와, 미안해요 성님. 단벌 제복인데. 맞지 않는 생각이 어지럽게 섞이며 시야가 다시 흐려졌다. 입술 사이에 스민 피맛만이 선명해서, 우물거리며 어떻게든 웃었다.
’제발 가유. 얼른. 어여 가유.’
눈에 담은 마음이 전해졌을까. 피를 씹으며 제 팔을 쳐내는 막둥이 부하 대원 앞에서 그가 천천히 일어섰다. 굳은 몸짓이 딱딱하게 굳은 인형같았다. 기계처럼 느릿한 그의 움직임이 답답했다. 말의 고삐를 부여잡으면서도 얼어붙은 시선이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문득 그가 총을 꽉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말 위에 올라탄 성님이 총에 걸린 안전쇠를 풀었다. 그가 총을 어깨에 얹었다.
편하게 해주려구 하시는 거유? 울 성님.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를 보고 헤실헤실 웃음이 새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연이 누님처럼 엄지 손가락이라도 치켜올려주고 싶었지만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부서져라 총을 움켜진 성님의 손가락이 여느 때의 성님 답지 않게 마구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야 성님, 처음 총 쥐었을 때 저 같잖아유. 참새 새끼 한 마리두 못 맞추겄네유. 웃는 낯으로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성님의 눈에 눈물이 어른 거리는 게 이상하게 선명하게 보였다.
미안, 미안해유. 총알두 애껴야할틴디. 그냥 가두 되는디.
...그라두 날 이리 두구가면 성님, 속이 씨꺼멓게 타버리겠지유?
..미안해유.
피와 눈물이 뒤섞여 시야가 완전히 희미해져버렸을 때, 이 쪽을 겨누고 있던 총구가 간신히 떨림을 멈추었다.
탕 !
- 유일한 생존자 박도원이 본부로 귀환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fin.
놈놈놈 당시, 도원이의 뒷 설정을 듣고 쓱쓱.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것저것 올려볼까 생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