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으로 그 것을 만났던 것은 세 살때였다. 통통한 뺨에 자그맣고 부드러운 털가죽, 동그랗고 귀여운 눈을 가진 동물이었다. 꼬리는 없었다. 얼핏 쥐와 닮았지만 그는 친근하게 사람을 따랐고 털가죽은 옅은 붉은 색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그 때는 요수가 더 흔한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어쨌든 그 애를 처마 밑에서 주웠다는 것은 좀 놀라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고대 요수서를 모조리 뒤져 그 것의 이름이 아스타 이스터 불린 베르니아 토쿠시 가멘디어 룬이 아니면 제주흥사초엽화강서체진명수대기서화사일 거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애를 서화라고 불렀다.

서화는 내가 자라는 동안 줄곧 함께 있었다. 내가 열살이 되었을 때 서화는 탈피했다. 붉은 털가죽을 한번 벗고 나서 서화의 색은 더 진해졌다. 탈피 직후의 서화의 요력은 더 강해져서, 아비의 사냥에 내가 함께 나가는 것은 순전히 열살짜리 어린애가 아니라 서화를 사냥에 써먹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4년간 아비는 누구보다도 사냥에 능한 사냥꾼이 되었다. 서화는 나직한 속삭임 한 번이면 눈에 비치지도 않은 속도로 달려가 사냥감의 목덜미를 깨물고 늘어지곤 했다.
열 네살이 되었을 때 또 한번 탈피를 마친 서화의 가죽은 이제 거의 검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서화는 더 강해지고 더 흉폭해졌다. 나에게만큼은 얌전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모두 경계심을 품고 대했다. 그 것은 내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버지는 애써 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기어이 어느 날 아비는 내가 없는 사이 서화에게 손을 대다가 팔뚝이 길게 찢기는 부상을 입었다. 아버지는 그 요물을 죽여버리라 펄펄 뛰었고 나는 그 후부터 아버지와 떨어져 서화와 단 둘이 사냥을 나갔다.

열 여섯이 되는 날에 서화는 다시 가죽을 벗었다. 검게 된 몸을 바라보며 나는 몇번이고 서화를 쓰다듬었다. 서화는 그 손길에 몸을 떨면서도 애써 자신을 억누르려 했다. 그 것이 안타까워 나는 몇번이고 울었다. 아버지가 고서적들을 다시 구해 읽기 시작한 것은 이 때즈음부터였다. 어느 우울한 날에 나는 우리 속에 따로 떼어놓은 서화에게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 서화는 날카롭게 울부짖고는 앞발로 내 손등을 찢어놓았다. 떨어지는 피보다도 서화가 그랬다는 사실에 놀랐다. 서화는 길게 길게 울고 제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비가 향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사와 마당에 불을 피운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불꽃이 눈 앞을 아른거리게 하도록 거세졌을 때에 아비는 나에게 서화를 데려오라했다. 불안해아면서도 우리 안으로 손을 뻗자, 기운이 없어뵈는 서화는 순순히 내 손 위에 올라앉았다. 모닥불 앞에서 눈을 희번득이고 있는 아비에게 서화를 보이자, 아버지는 말 한마디 않고 내 손에서 서화를 낚아 채 불꽃 속에 던져넣었다. 저철한 비명이 울려퍼지고 나는 불 속으로 뛰어들려했다. 그런 나는 뒤에서 아비가 막았다. 서화야, 서화야. 소리치는 내 목소리와 그 아이의 비명이 한데섞여 지독하리 만큼 잔인한 화음을 이루었다. 불꽃 속에서 서화는 날뛰었으나 나오지는 못했다. 나오지 못했다.

불꽃이 완전히 꺼진 후에, 아비는 불을 뒤적여 하얗게 변한 서화를 끄집어냈다. 화서火鼠, 불로 태어난 쥐의 형상을 한 요수가 서화라고 했다. 몸  속에 불이 쌓이며 더 강해지지만 그게 제어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죽여주는 것이 도리라고. 그렇기 않으면 자체가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주변에 피해를 입힌다고. 더듬더듬 말하는 아비 앞에서 나는 목이 쉬도록 울었다.

열일곱살이 되던 날에, 나는 처마 밑에서 구슬프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 거기에는 흙투성이가 된 작은 쥐같은 동물 하나가 파묻혀있었다. 꼬리는 없었고 눈은 까맣고 동그랬다. 그리고 그 하얀 털가죽 끝에는 희미하게 붉은 기가 남아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아이를 끄집어냈다. 조그맣게 우는 아이의 몸을 씻어주고는 끌어안고 잠들었다.

지금까지 두번째 서화는 두번의 탈피를 했고, 몸은 붉어졌다. 언젠가 이 아이의 몸이 먹빛으로 검게 변하면 나는 다시 서화를 불꽃 속으로 던져야한다. 그러니, 내 수명은 그 때까지라고. 사냥터에서 만난 사내에게 그리 말하자, 그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웃으며 서화를 끌어안았다. 불꽃 속에서 비명을 지르던 서화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다음에는 나도 함꼐 가겠다. 그렇게 맹세했다. 맹세했다.

2.

작은 방 가운데서 눈을 덜다. 휴게실 처럼 꾸며진 그 곳에는 중년의 사내들이 tv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옆의 쪽문으로 나가자 거기에는 휴게실 안에 있는 것보다 훨씬 적은 인원의 사람들이 모여앉아 팔짱을 끼고는 그 날 통과시킬 현안에 대해 느긋한 어조로 농담을 섞어가며 껄렁껄렁하게 일하고 있었다. 기가막혀 말도 하지 못하는 내 앞에서 ㄷ갑자기 쿠구구궁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건물을 바져나왔을 때 거리는 물로 뒤덮여힜었고 군데군데가 박살나 있었다. 나는 장난감같은 보트에 매달렸다.
Posted by 네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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