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읽으면서 영향은 받겠지만.. 나도 거기서 자유롭다고는 못하겠지만..
전혀 별 상관없지만 모처에서 신나게 써내려갔던 티에리아와 록온의 관계.
록티로서 티록에 대해서 설명해보라는 미션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흔히 주인공의 성장을 다룬다는데, 티에리아는 건담 더블오 내에서 가장 성장한 케이스이다.
일단 티에리아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노베이터, 일종의 휴머노이드. 인간보다 강화된 신체능력과 정신능력을 제외하면 사람과 똑같다지만 기본적으로는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 탓에, 다른 마이스터들이 1기 내내 무력근절을 외치는 저마다의 과거를 이유로 싸우고 있었을 때도 그는 혼자 이유가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임무'였기 때문에 분쟁근절에 참여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조정대상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의 세계관은 베다에 직결되어있었다. 기계적이고 오차없는 임무수행을 당연시하며 그는 베다의 의지를 따른다. 베다의 계획을 자신이 재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처음으로 절망했었을 정도. 그는 자신도, 주변의 사람들도 인간으로서 보기보다는 계획수행매체로서 보고 움직였다. 감정을 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변한 것은 '록온 스트라토스'에 의해서였다. 록온과 세츠나가 분쟁요소를 두고 서로 대립했으며, 세츠나는 록온의 분노를 받아들이고 록온은 그를 저격하는 것을 포기했을 때 티에리아는 처음으로 이 것이 인간인가,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이후 리본즈의 개입으로 베다와의 링크가 불가능해졌을 때. 자신을 이끄는 존재로부터 '버림받았다'라고 여겼던 티에리아를 이끌어내준 것도 록온 스트라토스였다. '너는 인간이니까.'
록온과 마이스터들의 관계가 흔히 엄마닭과 병아리로 비유되는데, 티에리아의 경우에는 그게 유독 진하다. 베다 속에 떠있던 그를 양수 속의 태아로 본다면 그 자궁이 사라졌을 때 세상으로 나오게 해준 건 록온 스트라토스이다. 이것만해도 대박인데 록온은 티에리아를 지키면서 자신의 한쪽 눈을 잃었고, 마지막에는 그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티에리아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너는 인간이니까'가 티에리아를 지상으로 이끌어준 첫마디였다면 눈 앞에서 죽은 그의 모습은 두번째 피의 세례였다. 다시한번 '베다'속으로-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였던 이노베이터로서 돌아오라는 말을 듣고서도 그는 '록온'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가 죽는 순간에 티에리아는 임무수행을 위해 싸우는 자가 아니라, 이유 때문에 싸우는 '인간'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쯤 서술하면 티에리아 아데에게 록온 스트라토스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대충 짐작이 갈까? 록온은 티에리아에게 인간을 보여준 사람이었고, 그를 인간으로 만든 사람이었고, 가능성과 계산아래 임무를 수행하던 그에게 가능과 불가능을 따지지 않고 전쟁근절이라는 목표를 수행하도록 이유를 짊어지게 한 사람이었다. 록온이 없었다면 지금의 티에리아 아데는 없었을 것이다. 그렌라간의 카미나도 동생에게 자신의 혼을, 흔적을 남겼다지만 록온의 경우는 백만배쯤 질이 나쁘다. 다른 마이스터들에게 많은 것을 쏟아부어놓고도, 자신은 아무 것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생명을 받은 것과 다름없는 티에리아와 티에리아가 돌려줄 틈도 없이 죽어버린 남자를 생각해봅시다. 매우 치셔도 좋습니다.
길었다. 그러면 이제 록온 스트라토스의 답 없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건담 마이스터 록온 스트라토스는 완벽한 리더였다. 신체능력은 그렇다치고 평가 테스트에서 저 티에리아 아데가 '흠이 없다'라고 평했을 정도니까(이건 티에리아가 인간다워지기 이전의 평가였다. 다시말해서 다 배제하고 산술적으로 데이터화해도 그의 능력은 완벽했다는 것이다). 리더로서 다른 마이스터들을 보듬어주었고 밝은 성격으로 마이스터들을 배려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배려는 뒤로가면 마이스터 전원을 이끄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는 록온 스트라토스 이기 이전에 닐 디란디였다는 것이다.
록온 스트라토스는 건담 마이스터로서의 가명이고, 닐 디란디는 그의 본명이다. 14살에 자살 폭탄 테러로 눈 앞에서 가족을 잃었고, 이후 하나뿐인 동생도 떼어놓고 복수를 위해 살아가기로 맹세한 어린 소년의 이름이었다. 그의 행적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건담에 탑승하기 이전 스나이퍼를 해왔던 듯한 묘사를 떠올려볼 때 결코 좋은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록온이 사람좋은 남자라면 닐은 복수자였다. 록온의 얼굴을 하면서도 그는 '테러'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는 닐의 본색을 드러냈다. 언제나 함께 다니는 하로에게조차 '떨어져있어'라고 말하고 돌아서던 때의 그의 얼굴에 서려있는 것은 증오였다.
닐과 록온의 두 얼굴이 문제가 되는 건, 록온이야 어찌됐던 닐 디란디에게는 CB의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에 있다.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서셰스가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망설임없이 복수를 우선했다. 임무 수행보다도, 자신의 목숨보다도. 8화에서 리본즈가 그를 '계획의 수행보다 개인의 복수를 우선시한 어리석은 남자'라고 했는데 까놓고 말해 틀릴 거 하나없다. 서셰스를 저격하는 순간에 그는 저격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감금실을 탈주해 건담에 올라탈 때부터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록온 스트라토스로서가 아니라 닐 디란디로서의 싸움이고 최후가 될 것이라는 것.그리고 이 넘은 세츠나가 구하러 오는 것을 보면서도 목숨을 구하려는 행동은 무엇 하나 안했다.
가장 답없이 막한 부분은 이 인간이 록온으로서 취한 태도도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열 네살의 자신을 떠올리며 어린 세츠나를 보듬어주었고, 그다운 상냥함으로 갈곳을 잃은 티에리아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여동생같은 어린 펠트에게 다정하게 웃어주었고 알렐루야에게도 동료로서 마음을 써주었다. 록온이나 닐이나 근본적으로는 상냥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만 '닐 디란디'가 되었을 때는 그 모든 것보다 다른 이유를 우선시하는 인종이었다는 거지. 그렇게 퍼부어줘놓고도 무엇하나 돌려받으려하지 않은 채 그는 떠나버렸다. 근본적으로, '닐 디란디'를 바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드물었으니까. 남은 사람 전원에게 각인처럼 박힌 채 자기는 스스로가 구제불능이라는 걸 알면서도 떠난 남자. 다시 한번 매우 치셔도 좋습니다.
자 커플링이다, 너무 길다..(...) 티에리아->록온의 백터는 사실 고민할 것도 없다. 티에리아를 만들어준 사람이 그인데 달리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요?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희노애락 전부가 록온으로부터 태어났다. 삶의 목표조차 그렇다. 티에리아에게 록온은 너무 완전무결한 존재라서 오히려 티에리아로부터 록온을 배재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그러면 록온->티에리아의 백터는? 없다. 아니 없지는 않다. 귀여운 동생같은 아이. 가르쳐줄 게 많은 아이. 하지만 여기에 뭔가 이어지기에 록온은 본인도 가진게 없는 사람이었다. 애들에게 얼마나 상냥하게 웃어주건 그는 복수를 우선시할 자신을 알고 있었고, 그 애들의 미래에 자신이 끼어들 틈이 있어서는 안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펠트에게 상냥하게 웃어줬지만 결코 그 마음을 받아주지는 않았던 것처럼, 과거에 얽매여서 빙빙 돌고 있는 자신이 애들에게 손을 뻗어봤자 좋은 결말이 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연애를 하기에, 누군가와 몸을 섞기에 이 놈은 마음이 없는 인종이었던 거다. 차라리 복수의 망령같은 거였으면 그나마 웃으면서 끝나지, 오지랖은 넓어서 신체적으로 안건드린다 뿐이지 정신 속에는 콱 틀어박혔는데 뭘 어쩌라는 거냐 진짜.. 고로, 록온은 절대 자신쪽에서 먼저 손을 뻗지는 않을 사람이다. 그러니 갈구하는 쪽은 당연히 목마른 티에리아가 되겠지. 자기 정신 챙기기에도 바쁜 록온은 상대를 받아들여주기는 해도 상대 안으로 자신을 밀어넣을 생각은 못할 거다.
+
옮기면서 몇마디 더. 저는 록온이 싫..습니다. 좋아하는 데 싫어해요.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었으면 시원하게 쳐날린 후에 사람 우습게 보지 말라고 쫓아냈을 겁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가지려면 주는 만큼 받아야하잖아요. 변화시키는 만큼 자기도 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받기만 하는 사람은 얄밉고 주기만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같지만 주기만하고 받지 않으면 결국 똑같아요. 상대 안에 자신이 없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데요.
커플링으로 가면 티에리아는 자기가 록온의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었다는 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록온이 서셰스 잡으러 튀어나가면서 티에리아를 생각했을까요. 설마^_^. CB고 자시고 포멧되있었다에 백원 겁니다. 마지막에 세츠나를 봐준 것도 용하지. 그나마 얘가 눈에 비치지 않았다면 이 사람 마지막은 '라일'에서 끝났겠죠. ...너 제발 저리 가라.
티에리아는 다 알고도 제 발로 일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보지 못한 그의 이면까지 포함해서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자신에게는 좋은 것만 주었다고 긍정하고서 나머지는 잊었겠죠. 록온이 주지 않은 것들. 그가 다메남(..)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닐 디란디로서의 실패한 록온까지.
여기까지 쓰고 나면 제 커플링관에서 티에리아는.. ^_^ 어휴 그런 남자 만나면 좋니 티에(티에리아빼고 다른 마이스터 이름 넣어도 됨)야.. 급이 되어놔서. 그래서 스스로 이렇게 정의하면서도 패러디 쓸 때는 잊습니다. 답이 없는 걸! 막한 걸!
마이스터들은 록온에게 저마다 다른 실로 매여있다는 느낌이 강해서 재미있습니다. 그 사람이 없어진 2기에 와서도 그렇네요. 으아아아 누가 록온을 매우 쳐줘.. 후려쳐줘..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