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침대 위치가 바뀌어서 등기대고 앉기 편해졌다고 좋아했는데 아뿔싸 인터넷 선이 짧네요. 여기까지 써 놓고 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모를 소리라는 걸 깨달았지만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지금은 딱 머리가 제목같은 상태인지라.
2. 파면 팔 수록 깊어지는 <가요로 보는 1980년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프로패서에게서 콜을 받았습니다(절망방송 패러디) '다음주에 발표해주세요, 미안합니다' 이 교수님 좋아요..!! 아니 이게 아니라 다음주까지 여유기간이 늘어난덕에 다음주까지도 이 1980년대의 늪에 빠져있을 것같습니다. 좋은건지 기쁜건지 싫은건지.
3. 제 어머님은 광주분이십니다. 광주가 봉쇄되었던 그 때 그 곳에 계셨지만 광주사태를 겪은 분은 아니십니다. 막내딸의 안위를 걱정한 할머니가 딸을 방에 가둬버리셨답니다. 학생운동도 민주화도 잘 모르는 갈래머리 여고생은 그 말에 따라서 광주사태가 끝날 때까지 광주 외곽에 있는 집에서 나가지도 못했고요. 광주시민 전원이 광주민주화항쟁에 참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어머니만 해도 그랬구요. 아니 어쩌면, '도시 봉쇄에 겁먹은 여학생'이라는 모습 자체가 어쩌면 그 자체가 광주의 한 모습이겠지만.
4. 이번 1980년대를 배우며 새삼 생각한 거지만, 역사책에 정리되지 않는 역사의 순간은 뭐랄까.. 언제나 깔끔하고 아름다웠던 적이 없었구나하고 새삼 실감했습니다.
최루탄가스를 마시며 뛰쳐나갔고, 고문실에 갇히는 걸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했던 사람들. 뛰쳐나간 사람들에게조차 저마다 품고 있는 것은 달라서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망설이고, 무서워하고, 겁도 먹고, 판단미스도 하고. 광주도 그랬어요. 누군가가 무서워했고 누군가가 거리로 나갔고. 시민들에게는 흑심조차 없었습니다. 내란이요? 설마.
죽어서 쓰러진 무참한 시신들의 사진이 적나라하게 올려져있었습니다. 누가 그 참담한 실상을 보고 화내지 않겠습니까. 교과서에 실린 여학생의 주검은 차라리 온건했습니다. 짓이겨진 머리는 형체도 없었어요.. 차마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할만큼.
5. 학생운동가도, 시위도, 그냥 무지할만큼 한길이고 순수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이상을 믿고 있었구나,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요. 지금보다 훨씬 아무 것도 없는 환경에서, 지금은 중학생도 현대사회풍조를 흰눈뜨고 포기하는 이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순수하게 제 깃발을 흔들었던 사람들이니.
저는 한국 근현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말로 포장해도 우와 어리석었구나-싶은 부분들이 있거든요. 니드레 니 밥그릇 챙길 시간에 나라걱정 못하간? 사회주의고 민족주의고 간에, 니들 일본이 미웠던 거 아니었누? 하는 거같은 거. 1876년 개항 이후로 줄곧 발버둥치고 발버둥치고, 잘못된 길로도 나가고, 그래도 필사적이었고. 그랬던 한국.
우와 빌어먹을. 저 이 암담한 나라 되게 좋아하나봐요. 바보같을만큼 허영심강하고 순식간에 물들고 확 타올라 일어서고, 그래도 정이 많고, 욕심많고, '한국'에 대한 자긍심이 지나치게 큰 이 나라가 좋습니다. 바보같은 점까지 포함해서 내 나라에요. 평소같으면 절대 이런 소리 안할 거지만.
6. 부끄러운 대사 금지, 난데없는 애정고백은 여기까지 해두고. 술렁술렁 글이라도 쓰겠습니다. 오늘은 오프에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