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아 아데가 파일럿 수트를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향했을 때 그 안에는 선객이 있었다. 긴 의자 위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던 선객- 세츠나는 문을 열고 들어온 티에리아를 보고 눈빛으로 짧게 인사를 건넸다. 티에리아는 할듯 말듯한 목례로 그 인사를 되받았다. 룸 안으로 들어온 티에리아의 뒤에서 문이 기계음을 내며 천천히 닫혔다. 딱히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티에리아는 세츠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묵묵히 한 켠에 헬멧을 내려놓았다.
「할 말은 없나?」
침묵을 깨고 세츠나가 건넨 말에 티에리아는 잠깐 겉옷을 풀어헤치던 손을 멈추었다.
「무슨 말이지?」
「..그에 대해서.」
티에리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차분히 그는 슈트에서 뺀 팔을 내렸다. 세츠나도 티에리아를 보고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곳을 본 채, 대화는 조용하게 이어졌다.
「케루딤에 탑승할 마이스터는 미정이었다. 누군가는 왔어야 했어.」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럼 무슨 얘기냐.」
세츠나의 말에는 주어가 빠져있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피차 알고 있었다. 티에리아의 대꾸에 세츠나는 잠시 말을 고르듯 입을 다물었다. 티에리아는 굳이 그를 도와줘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막 벗은 슈트의 상의 부분을 허리에 묶고 자신의 제복을 꺼낼 때에야 세츠나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의 동생이다.」
「알고 있어.」
빠르게 이어진 대답에 세츠나는 고개를 들고 티에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꺼낸 옷을 갈무리 하며 티에리아는 말을 이었다.
「라일 디란디. 29세. 아일랜드 출신. KPSA 테러에서 살아남은 닐 디란디의 쌍둥이 동생. 알고 있다.」
「그가.. 네게도 이야기했었나?」
다소 당혹스러운 듯한 세츠나의 말에 티에리아는 뒤돌아서 세츠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서 씁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그는 말했다.
「그렇게 했을 것 같나.」
「..나는..」
「나중에 독자적으로 조사했다. -CB로 돌아온 이후에.」
「..티에리아 아데.」
「기밀엄수 의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웃는 티에리아의 얼굴은 어쩌면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세츠나는 문득 티에리아가 이런 표정을 지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시선을 마주하고 말을 이을 자신이 없어 세츠나는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에게서.. 동생에 대해서 들었다. 그래서..」
「네 선택이 그랬다면 굳이 내게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세츠나.」
티에리아는 세츠나의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말을 끊었다. 손끝을 내려다보던 세츠나가 쓰게 웃었다. 반쯤은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경멸하나? 그의 대리를 찾아온 나를.」
「설마. ..너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
「나라도 그렇게 했을지 몰라.」
세츠나는 천천히 티에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시 돌아서 있는 그의 표정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직한 목소리만이 방안에 느리게 울렸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허락받지 못했다.」
「티에..」
「나는 '닐 디란디'인 그를 몰라. 나에게 있어서 그는 닐 디란디가 아니라 록온 스트라토스였으니까.」
모니터 너머에 표시되어있던 닐 디란디의 정보는 무엇하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세츠나와 마주한 그가 자신의 본명을 입에 담지 않았다면 그 이름조차 허공에 흩어져버렸을 것이다. 아일랜드에서의 닐 디란디. CB에 들어오기 이전의 닐 디란디. ..록온 스트라토스가 아니던 시절의 닐 디란디. 적어도 티에리아 아데에게 있어 그 것은 무엇하나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낯설고, 어색했다. 하물며 닐 디란디를 입에 담는 '라일 디란디'같은 건.
「내게 있어 그는 록온이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따라서 그의 대신도 없어.」
세츠나는 잠시 침묵했다. 등 뒤에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면서도 티에리아는 뒤돌아 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도, 티에리아에게 있어서도 똑같이 경애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티에리아 아데는 록온 스트라토스를 온전하게 자신 안에 남겼다. 자신과는 다르게. 티에리아 안에서는 닐이 록온으로서의 처음과 마지막을 모두 끝냈기에. 문득 세츠나는 티에리아에게 자신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음을 알았다. 입술을 열어 세츠나는 그 감정을 밖으로 흘려보냈다.
「..네가 부럽다.」
「그렇나.」
묵묵히 대답한 티에리아를 놔두고 세츠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타부타 인사를 건네지 않고 세츠나는 문을 빠져나갔다. 자신은 티에리아처럼은 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그와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를 다시 데려왔다.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단지 그와 다시 한번 함께 하는 것만을 생각했다.
록온을 끝낼 수 없었다.
세츠나가 나간 직후에, 티에리아는 천천히 서 있던 자리에서 돌아섰다. 옷을 마저 갈아입는 대신 그는 방금 전까지 세츠나가 앉아있던 자리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상의만 벗어서 허리에 묶는 법을 처음 가르쳐준 것도 록온이었다고, 문득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랬다. 대부분의 것들을 그에게서 배웠다. 베다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쓰잘데기 없는 것에서 더없이 중요한 것까지. ..정말 많은 것들을 그에게서 배웠다.
'네가 부럽다'
세츠나가 남기고 간 말이 머리 속에서 울려퍼졌다. 문득 티에리아는 허탈하게 웃었다. 천천히 팔을 들어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렇게 눈을 가리고, 조용히 세츠나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말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그 자신에 대한 것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에게는.
fin.
21. あなたを初めて抱いた人 (당신을 처음 안은 사람) / 海原の人魚
미련을 남긴 사람과 미련조차 남길 수 없었던 사람.
전 록온을 싫어하는 걸까요 좋아하는 걸까요, 최근 들어 더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