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5초 정도가 지나고서 세츠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들었다. 티에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난 세츠나는 그 맞은 편에 앉았다. 티에리아는 다시 약 5분쯤 생각과 연산과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동료를 쏘아보는 시선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있었다.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은 채 티에리아는 입을 열었다.
"세츠나 F 세이에이."
"듣고 있다, 티에리아 아데."
"왜 한 건지 묻고 싶다."
"너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약간 어린기가 묻어나는 세츠나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 티에리아는 그의 말을 반추해보다가 간신히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성은 대상 외로 해야한다는 건 피차 동의하는 바였다. 하물며 록온 스트라토스며 알렐루야 합티즘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도 좀 이상했다. 아마 자기 정도가 제일 맞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에리아는 조금 더 고뇌한 후에야 처음 생각했던 것을 입에 담았다.
"묻고 싶은게 있다."
"뭐지."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록온은 이상한 걸 경험해보라고 하는군."
"동감이다."
사람좋은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연상의 리더에 대해 두 소년은 조용히 서로 동의했다.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두 사람의 감정은 우리집 애가 사고치고 다니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어머니의 심정과 제법 닮아있었다. 분명 올려다보아야하는 사람인데도 그 태도는 어쩐지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둘 다 조금만 더 성인이거나 세상물정을 알았다면 세츠나와 티에리아는 그 감정이 호감가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두 사람은 그런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잠깐 더 지체하고, 티에리아는 세츠나를 바라보았다.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소년같은 얼굴이 거기 있었다.
"세츠나."
"?"
"나도 경험해보고싶다만."
"상관없다."
"말해두지만 좀 답답하다고 생각한다. 숨도 막히고."
"상관없다, 숨을 참는 것정도는 익숙해."
"그러면 기꺼이."
주의사항에 대해 세츠나가 예의 평소와 같은 태도로 받아들이자, 티에리아는 차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상태로 티에리아는 잠시 주저했다. 모양 좋은 손끝으로 자신의 입술을 한번 쓸어보고, 망설여지는 듯 머뭇거렸다. 세츠나는 가만히 티에리아를 기다렸다. 뭘 하고 있냐는 듯 빤히 쳐다보는 세츠나의 시선을 깨닫고서야 티에리아는 표정을 바꾸었다. 세츠나는 자리에 앉아서 묵묵히 티에리아의 행동을 주시했다.
또다른 5초는 방금 전보다는 조금 길었다.
처음과 비교해서 식사자리의 분위기는 썩 부드러워졌다. 대화의 대부분은 이야기를 던지는 록온과 그 것에 응대해주는 알렐루야가 끌고 나가긴 했지만, 다들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상상이 안가던 때를 생각해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정글 오지의 대기 포인트에서 천막하나 없이, 휴대가 편리한 식판 위에 보존식량의 밀봉을 뜯어 얹어놓았을 뿐인 초라한 식사긴 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분위기 때문에 제법 유쾌해진 것도 있어서, 록온은 장난스레 말했다.
"그러고보면 다들 첫키스 정도는 해봤으려나~"
"로,록온! 무슨 소리를!"
"이 정도는 괜찮잖아, 알렐루야. 에, 리히티나 랏세나 크리스는 그렇다치고, 티에리아랑- 세츠나는 미경험이려나?"
"둘 다 아직 어리잖아요."
"해봤습니다."
"옆과 동감이다."
"에,엑?! 두,둘다? 나,나는 들은 적 없어!"
"말한 적 없습니다."
"마찬가지다."
"사,상대가 누구야?!"
장난스레 한 말에 돌아온 의외의 폭탄에 록온은 잠시 휘청거렸다. 마음만은 tv에 나오는 비행청소년들의 평균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매일 밤낮으로 보면서도 우리 애들은 그럴리 없을 거라 믿고 있었던 어머니가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와 같은 심정이다. 그나마 전화와 달리 묵묵히 식판의 식량을 비워나가는 애들은 더 이야기 해줄 눈치도 아니어서, 록온은 기어이 당황과 당혹과 슬픔(!) 속에서 상대가 누구였는지 물었다. 동요가 비져나와 말은 여전히 더듬거리고 있다. 마음만은 외박한 딸아이에게 상대가 누구였냐고 묻는 어머니 심정이었다. 세츠나와 티에리아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티에리아 아데."
"세츠나 F 세이에이."
- 짧게 말하고 다시 수저를 집어든 두 사람 앞에서, 록온과 알렐루야는 나란히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fin.
심심한 김에(..) 쓱쓱 써봤습니다.
티에리아와 세츠나 조합은 1기 때도 2기 때도 좋아요. 둘다 과묵한 성격이지만 필요한 만큼은 다 말하고 있다는 느낌. 다만 그 필요한 만큼의 대화가 알맞다고 느끼는 건 두 사람뿐.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