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runa-
미션을 수행하고 있지 않을 때도 톨레미 내의 스케줄은 빽빽하게 채워져있었다. 뭐라하든 세상을 상대로하는 규모의 움직임을 보이는 집단이다. 가장 직접적인 수행원에 해당하는 마이스터라면 더 할말도 없다. 사격과 신체단련. 거기에 중력 훈련. 건담은 몇 세기 이상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기체였고, 당연히 다른 기체에 비해서는 훨씬 파일럿의 부담이 적었다. 그렇다고 해서 몸에 걸리는 과중을 견뎌내지 못해서야 마이스터가 될 수도 없다. 가상 미션 프로그램이 입력된 훈련용 장치에 올라타고 몸에 걸리는 G를 견디며 10여개의 자잘한 가상 미션을 마치고서야 합격신호가 들어오고 풍경이 사라졌다.
[미션 완료, 미션 완료!]
"후우, 오늘도 만만치 않구만. 하로, 얼마나 걸렸어?"
[97분,97분!]
발랄하기까지한 파트너의 알림음을 들으며 록온은 화면 너머를 다시 바라보았다. 한시간 반 이상인가, 뭐 깔끔하게 떨어지긴 했구만. 록온은 혀끝을 쯧 차고 시뮬레이션 용의 콕핏에서 내려왔다. 그와 거의 비슷하게 기계가 열리는 징-하는 소음이 울려 록온은 옆을 쳐다보았다. 오전의 훈련을 함께 한 것은 최연소 마이스터였나보다. 헬멧을 벗은 어린 얼굴에는 검은 고수머리가 땀에 젖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록온은 난간에 기대어 자신보다 조금 늦게 내려오는 그를 기다렸다.
"여어, 세츠나. 수고했어."
"..."
"많이 빨라졌네? 프로그램은 나와 같았으려나."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웃으며 건넨 말에 약관 16세의 어린 마이스터는 무뚝뚝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더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잘라내는 그 태도에는 이미 익숙해져있어, 록온은 웃는 얼굴을 굽히지 않으며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세츠나는 잠깐 불쾌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떨쳐내려 하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면 떨쳐낼 가치도 못 느꼈다는 듯한 얼굴일까. 록온은 잠자코 노골적인 소년의 불쾌감을 무시했다.
"7번째 가상 미션은 어땠어? 비교적 낮은 난이도였지만 너한테는 좀 까다롭지 않을까 싶었는데. 저격 포인트가 있는 미션은 아무래도 귀찮지?"
"근접전으로 처리해도 충분했다."
"효율성 나쁘다 그거? 분산되어있는 상태에서 각개격파라니. 집단으로 뭉쳤을 때는 장거리 저격이 편하다고."
"그건 네 방식이겠지."
"뭐 엑시아는 접근전 특화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네 능력치는 너무 재멋대로인 경향이 있어. 접근전은 몰라도 사격으로 가면 기준치 간당간당이지? 편식은 나쁘다 너?"
"...그렇게 생각하나."
"조금씩은 해두는 게 좋잖아."
마냥 굳어있던 세츠나에게서 의외로 솔직한 질문이 나왔다. 표정없어보이는 적갈색 눈동자 밑에 불안이 어리는 것을 솜씨좋게 캐치하고, 록온은 조금 지나쳤나 싶어 멋쩍게 웃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건담'에 대해서는 과민한 아이다. 다독이듯 말을 흘려버리고 록온은 땀에 젖은 아이의 이마를 손끝으로 훔쳐주었다. 움찔하고 어깨를 떤 세츠나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쳐냈다. 경계심 가득한 아이를 눈치 못챈 양, 얼얼한 손끝을 어루만지며 짐짓 장난스레 말했다.
"다음에 사격 연습이라도 같이 해줄까?"
"..필요없어."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말라니까, 2년이나 같이 싸워온 사이인데."
"..."
밝은 어조의 록온의 말에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세츠나는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세츠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냐는 듯 록온이 돌아보자, 세츠나는 감정없는 얼굴로, 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쏘아붙였다.
"내가 함께 싸우는 건 엑시아다. 네가 아냐."
"..."
싸늘한 표정에 록온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말해놓고도 스스로 좀 망설여졌는지 세츠나는 곤란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이 말만은 해야겠다는 듯 차가운 말을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내게 필요이상 접근하지 마라, 록온 스트라토스."
네가 사적인 부분까지 알 필요는 없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무표정한 시선에 록온은 아무 말도 대꾸하지 못하고 당혹한 채 멈춰있었다. 사뭇 미안한 듯, 혹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그 시선을 외면한 세츠나는 록온을 스쳐 앞서 나갔다. 열 여섯살의 평균치보다 작은 신장탓인지, 앞으로 나가는 뒷 모습이 한참 작아보였다. 어린 소년의 뒷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록온은 씁쓸하게 웃었다.
"..우유라도 사줄까 했더니."
스스로도 필요이상의 참견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가족놀이를 하러 이 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어차피 손을 내민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그 손을 끝까지 잡아줄 여유도 없었다. ..바보같은 짓이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멀어져가는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열 여섯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작은 어깨는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을 짊어진 것처럼 보였다.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괴롭다고는 말하지 않겠지. 미처 자라지도 않은 몸으로 전장으로 나간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러니 어쩌겠는가, 저런 불안한 애를 혼자 둘 수도 없고.
이 지경에 와서도 그런 생각을 못 버리는 자신이 바보같다고 새삼 생각하며, 록온은 귀를 파닥이며 쫓아오는 파트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fin.
실은 이 뒤에도 with 티에리아, with 알렐루야가 있습니다.
내키는대로 죄다 써볼 생각이었으나 과제가 있어서 일단 셋쨩 편부터.
1편의 세츠나는 되게 록온이 닿는 걸 싫어했을 것같아요. 손을 내밀어주긴 하지만 얘가 싫다는데 비집고 들어갈 만한 적극적인 남자도 아니니까 스킨쉽은 미묘했을 듯.
제가 생각하는 1기 초반 록온이 취하는 스킨쉽 강도는 세츠나=티에리아<<<<펠트<<<<알렐루야정도.
아 티에리아가 최하위인가..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