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오 판이 되는 건 이미 포기했지만 일상 이야기만 줄줄히 올리자니 뭔가 아쉬워서 또 고리짝을 뒤져 꺼내듭니다.
계절은 여름이겠다 최근 오슈 근처도 평화롭겠다 때마침 야채가 잘 자랄 계절이니 오슈 다테 군의 충실한 보모가신 가타쿠라 코쥬로 카케츠나는 때 아닌 열병에 휩싸였더랬다. 소쿠리에 바리바리 쌓아놓은 무 씨와 상추 씨와 부추 씨들과 마주앉아 눈싸움을 하는 바보짓을 하기를 사흘. 밤에도 꺼질 줄을 모르는 등잔불이 신경쓰여 엄한 잠을 설치던 주군이자 오슈 필두 다테 마사무네는 그만 한계를 맞이했다. 근래들어 싸움이라고는 등 뒤로 털어도 안 일어나는 팔자니까 너 좋을 대로 실컷 심고 오라고 내친김에 더 이상 확장이 불가능한 텃밭의 한계를 넘어 뒷산으로 쫓아보냈다. 마사무네님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 얼굴에다 대고 helldragon을 대폭할 뻔했던 오슈필두가 간신히 끊어진 신경줄을 이어맞추고 안 갈 거면 난 너한테 여기 맡겨두고 우에다 성에다 놀러가련다 그러고보면 최근 칼국수가 먹고 싶었는데 카이 지방 명물이라지 등등등 한참 부채질을 하고서야 코쥬로는 뒷 산에 달려들어갔다. 어떤 취미생활을 즐겼을지는 무서워서 알고 싶지 않지만, 코쥬로가 사나다 유키무라나 마에다 토시이에마냥 화속성이었다면 필경 오슈의 산채들중 얼마간은 화전을 일구는 코쥬로의 손에 홀랑 타서 벗겨졌을 것이다.
어쨌든 시원하게 욕구불만을 해소한 다테 제일의 가신은 만족스레 돌아와 아오바 성 안 채 주군전용의 별실을 열어제꼈다. 주군의 개인적 공간에 무례한을 운운하기에 이 보모가신은 그 주군이 열 두살 때부터 곁에 붙어서 검쓰는 법에서 그릇 씻는 법 야채 자르는 법까지 가르쳐온, 심히도 팔불출충성스러워 차마 주변인이 끼어들 수 없는 분이라 그 누구도 제재하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다녀왔습니다, 마사무네님... ..랄까 지금 뭐하십니까?"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코쥬로는 굳었다.
"여, 코쥬로. welcome."
시원스레 대답하는 모양새가 참으로 당당하지 않느냐고 개도 안먹을 생각을 하던 코쥬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열 한살때 헤이안 시대에 읊어졌다는 유서깊은 키노 토모노리의 싯구를 베끼다가 상을 들이엎은 이후, 비록 실력이 얼마나 출중하건 붓을 쥐는 횟수가 손에 꼽히던 그 마사무네 님이, 별실 한복판에 홑옷 차림으로 앉아 붓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탕약을 준비할까요?"
"haa?"
"아니면 휴양을 준비.. 이,일단 식사부터 보양식으로 바꾸어야되겠군요. 그러니까"
"코쥬로?"
그러니까 도대체 얼마나 격무에시달리셨으면여유시간에붓을쥐고앉아계시단말씀입니까이자식들내가없는동안그렇게단단히챙기라고일렀는데도대체무슨짓을했길래마사무네님이아니그보다도어서주군부터챙겨야하는데어떤일을당하셨길래설마사람이죽을때가되면안하던짓을한다더니그래이게다그우에다성의주인놈때문이다그놈의어르신이나따라갈것이지허구한날이면쳐들어와서우리마사무네님께매달려온갖난리를다치고돌아가더니결국마사무네님이몸을망치셔서이러는거아니냐족쳐주마그놈의열혈바보남의귀한주군에게무슨짓을--!!!!!!!!!!!!!!!!!!!!!!!
"..hey, 내 말은 씹는 거냐."
마음껏 폭주하는 코쥬로 앞에서 도노는 손가락끝으로 뺨을 긁적였다.
검을 들고 달려나가려는 코쥬로를 수십명의 가신들이 들어붙어말리는 동안 이미 익숙해진 행위에 쩌어어기 가이지방에서 오늘도 열혈로 불타고있을 정인에게 돌아갈 파급행위따위는 눈꼽만큼도 신경쓰지않고 마사무네는 고운 종이위에 쓱쓱 붓을 내질렀다.
"주군. 무엇을 하십니까?"
드르륵, 문이 열리더니 교토에서 각종 문화를 접하고 돌아온, 굳이 따지자면 문인쪽에 좀 더 가까운 탓에 카케츠나님 말리기 전쟁에서 일찌감치 나가떨어져버린 재정 담당 스즈키 모토노부가 초췌한 걸음으로 걸어들어왔다. 기운없는 하소연에도 마사무네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여, 모토노부."
"부탁이니 코쥬로님좀 말려주십시오. 병사가 다 나가떨어지겠습니다."
"괜찮아, limit가 넘어가면 알아서 끊어져."
과연 오랜 기간동안 겪어온 만큼 다루는 법을 안다고 감탄해야할지, 아니면 그 동안 죽어나는 가신들은 어쩌라는 건지, 그보다 하마마츠성의 혼담다 타다카츠 님도 아닐지언대 무슨 건전지 끊기는 것도 아니고 리미트라는 게 뭔지 따져야할지 고민하던 모토노부는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언제는 이 집단이 조용히 살았는감. 현실에서 눈을 돌리자 이내 마사무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군의 태도에 흥미가 동한 그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죽죽 붓을 내리 긋고 있는 주군의 곁에 가만히 서서 들여다보았다.
"이것은.. 회언입니까?"
오랜만에 보는 주군의 시원하면서도 기세 좋은 문구에 감탄하면서 그리 묻자, 하아? 하고 미간을 세운 마사무네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설마, 내가 뭐가 아쉬워서 니들한테 잔소리같은 걸 하냐?"
그건 저 쪽에서 다 하잖아, 하며 주군이 붓대로 복도쪽을 쿡쿡 가르키는 것과 너무나도 절묘하게 울려퍼진 병사들이 비명소리가 맞물려 조화를 이루었다. 이게 마사무네 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모니인가. 모토노부는 아파오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아무리봐도 조언조에 가까운 글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허나 이 것은 훈계의 의미를 담은 듯이 보입니다만.."
"hm, 눈치 좋네."
"아니, 보통 읽으면 압니다."
"헤에, 시게자네는 못읽던데?"
"설마요. 암만 무로 이름을 날리셔도 그 분이 못읽겠습니까. 낫놓고 기역 자 모르는 뇌근육바보도 아니고."
"you, 의미없이 독설뿜지마. 들여다보더니 얼굴 가리고 나가버리던데?"
태연한 말투에 설마설마 망설이면서도 모토노부는 다시 글을 들여다보았다. 몇번인가 수정했는지 어지럽게 놓인 종이들 사이에서 깔끔하게 쓰여진 짧은 글귀.
인仁이 지나치면 약해진다.
의義가 지나치면 딱딱해진다.
예禮가 지나치면 아첨이 된다.
지知가 지나치면 거짓말을 한다.
신信이 지나치면 손해를 본다.
이 정도면 시게자네님이 못 읽을리가 없을텐데, 하고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옆에서 시원한 목소리가 울렸다.
"슬슬 유언이라도 남겨둘까해서"
찰나보다 더 짧은 순간 모토노부는 숨이 멈추는 기분을 맛봤다고 한다.
순식간에 에치고의 주인 옆에 섰다가 장미폭풍에 얼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모션을 멈췄던 모토노부는 간신이 떠듬거렸다.
"..실례지만 지금 마사무네님은 스무 살이십니다?"
"사람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아냐."
"주군! 아직 한참 남은 젊고 탱탱한 나이 아닙니깟!!!!!"
"젊고 탱탱이라니, 내가 여자냐?"
"남자라도 젊고탱탱한 건 탱탱한 겁니다!!! 피부에 주름하나 없으시면서 무슨 망발을!!"
"아니, 전쟁터에서 죽는 건 나이에 관계없-"
"시끄럽습니다!! 젊고 탱탱한 나이에 무슨 헛소리랍니까!"
염라대왕 얼굴이 되어 주군한테 소리지르다니, 다테 군이 아니었다면 당장 할복감이건만 모토노부는 개의치 않았다. 예의가 다 뭐냐. 소리지르다말고 내려다보자 눈이 댕그래져서 에?하고 올려다보는 주군의 얼굴이 허구헌날 찾아오는 강아지새끼마냥 순진무구해보여서 모토노부는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거기서 그만 김이 팍 새어서는, 애꿎은 종이만 박박 찢어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노려보다 모토노부는 부루퉁해서 중얼거렸다.
"가뜩이나 풍진세상인데 뭘 그리 서둘러 준비하신답니까. 놀다 가면 그만이지."
"..너 은근히 성깔있었다?"
"오슈에서 살다보면 없다가도 생깁니다."
"누가 지금 죽는댔냐, 유비무환이라길래 미리 준비하는 거지."
"스무 살에 미리 준비 안해도 됩니다, 그딴 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남은 잘해보려 한건데!!!"
"아 그니까 그게 왜 하필 유언이냐고요!!"
"니가 회까닥 쓰러져봐라, 멋진 말 떠오르냐!!"
"그 놈의 후까시는 어디서 들었답니까!! 지금 함 죽어보실래요?!"
"어쭈? 니가 나한테 이기겠다 이거냐?!"
"말이 나와 말이지만 코쥬로님보다는 마사무네님이 후환이 덜 두렵지 말입니다!!"
"마,말 다했냐 너?!"
"마사무네님한테 깨져봤자 까짓거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코쥬로 님한테 깨지면 세 끼 반찬에 벌레가 들어있다구요!!! 뭐라하면 무공해니까 그런 거라면서 남.기.지.말.고 먹으라 그러고!!!"
머리에 피가 오른 김에 모토노부는 ok, 해보자!! 하고 덤벼드는 주군에게 말릴 생각도 안하고 대뜸 따라 일어났다. 그저 지고지순하고 현명한 인종으로만 보였던 모토노부는 그날 처음으로 망가졌다.
......덧붙여말하면 머리에 피가 오르면 사람은 무식해진다고했던가, 차후 파급효과도 잊어버렸다.
차마 별실에서 검을 뽑을 수는 없는 팔자라 피오른 김에 집어든 붓들끼리 서로부딪혀 두 사람은 피 대신 까만 먹물을 여기저기 뒤집어썼다. 덧붙여 방 안도 개판이 되었다. 암만 붓 장인이 애정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본들 생전 그런 용도로 쓰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터, 두 사람다 씩씩 대며 드러누웠을 때는 붓대는 둘다 홀랑 꺾여있었다.
"God..damn....이... 방.. 어쩔.. 거냐."
"반은..주군 탓입니다?"
"이게 진..짜..."
망가진 김에 끝까지 갈 생각인지 숨 쉬기도 바쁘면서도 모토노부는 꼬박꼬박 대꾸했다. 욱,하는 게 곁에서 들리는 것같았지만 차마 2차전을 시작할 힘은 없는지 마사무네는 투덜투덜 입으로만 욕했다. 그나마 절반은 외국어라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거참, 누가 죽는댔냐, 죽기 전에 준비한다는 거지."
어느 정도 숨이 진정된 마사무네가 투덜투덜 중얼거리는 말에 이 사람은 뭐에 화를 내는 건지 진짜 모르는 갑네 싶어 모토노부는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어린애라며 사뭇 부드러운 눈으로 팔불출 대화를 늘어놓던 코쥬로 님이 순간 이해되어버렸다. 하기사 그런 글 쓰고 그런 어조로 그런 소리를 하니까 시게자네님이 얼굴을 가리고 도망갔지. 내가 이리 답답한데 마사무네님 바보인 그 사람은 어땠겠어. 필경 눈물이 핑돌아 걸려있었다는 데에 쌀밥 세끼를 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마사무네님, 그 말, 코쥬로 님께 읊지는 마십시오.."
십중팔구 아오바 성이 남아나질 않을 겁니다. 자신이 이렇게 허탈하고 화가 날진대, 시게자네 님마냥 얌전히 달려나와줄리가 없는 성난 보모충신이 날뛰기라도 했다간 필경 복도에서 벌어진 저 난잡한 사태정도로는 끝나지 않는 대 합전이 벌어지리라. 모토노부는 기운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 후 어찌어찌 먹물 범벅이 된 글귀는 보이지 않은 채 사라졌으나 소중한 마사무네님 얼굴을 먹물범벅으로 만든 대가로, 스즈키 모토노부는 한동안 녹색채소사이에 꿈틀대는 녹색의 채소아닌 무언가들에 죽도록 시달려야했다한다.
fin.
도노의 유훈을 보고 쓱쓱. 역사 속의 그분이 남긴 글을 진중할진대 바사라 필터(...)를 끼고보면 그 밑에 '그니까 적당히들 살아 hahaha'가 보이는 것같았더랬습니다. 워낙 도노가 다테 진영의 아이돌인지라(...) 필경 저런 짓을 스무살 적에 했다가는 다테 일문 전원이 들고 일어나 난리를 피웠다에 한표 겁니다.
나베르에 둥지 틀고 살 적에 썼던 바사라 패러디. 역사야 어쨌든 간에 전국 바사라의 다테 도노는 귀여워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