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릴까 말까 고민하긴 했는데.
하나요의 존재를 알고 나서 하로의 정신이 12세 정도의 소녀였으면 어떨까 하고 써본 겁니다.
드림소설은 드림소설인데 이상하게 막나가서 미안해요 죄송해요 세상에 사죄합니다
내 기억은 그들처럼 실체화되어있지는 않았어요. 나는 접속 단말이고 그걸로 충분하니까. 긴 세월을 살았죠. 많은 것을 저장했습니다. 스쳐갔던 정보들. 남아있는 기억들. 위대한 꿈을 꾼 괴짜 천재와, 그가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한없이 먼 곳을 내다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다가올 것들을 대비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모든 것은 알지 못했어요. 그저 남아있는 단편적인 기억들뿐. 몇백년이 흐르고 나는 파트너를 만났죠. 항상 곁에 있었던 사람. 인간을 대하듯 내게 말을 걸어줬던 사람. 가끔 지독히도 우울해진 체온으로 나를 밀어내던 사람. 어린아이의 것같은 밝은 톤으로 목소리를 내고, 풍화되어 사라지기 직전의 인간처럼 서늘한 눈매로 세상을 보던 사람. 좋아했어요. 다정한 그 사람을. 한낱 기계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믿지 않으실 건가요?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아요. 하지만 내 어머니는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졌죠. 그보다 원시적이라해도 나도 감정이 없지는 않아요. 나를, 어머니를, 모든 것을 만든 천재노인의 머리 속에서는 인간도 기계도 똑같이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이었다고요. 그래도 믿지 않겠다면 하는 수 없지만.
내 파트너를 잃었을 때 나는 부서질 뻔했죠. 밀려오는 정보가 전하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어요. 그의 부재같은 건 더더욱. 그래도 시간이 규칙적으로 흐른 후에 다시 배정된 나의 파트너는 그가 아니더군요. 익숙한 성문과 익숙한 외관. 한순간 그가 수복되어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인간은 잘 부서지고,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정보를 그 순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반가웠으니까요. ..반가웠으니까.
새로운 파트너는 이전의 그보다는 많이 어리고, 많이 부족한 사람. 가슴에 비어있는 것을 채울 줄 몰라서 헤멜 것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사람. 그를 처음 마주쳤을 때 그 이전 나와 함께 했었던 파트너와의 첫 대면이 생각났어요. 예전의 그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정서적'이 된 내 회로들은 그를 마주하고 많은 것들을 민감하게 읽어냈어요. 아직 소년티를 못벗은 청년의 경계심어린 눈초리. 기계가 읽어내는 정보는 생각보다 훨씬 정교해요. 심장박동, 체온, 성문과 홍채. 느슨하게 웃는 웃음 뒤에 숨겨진 약한 소년. 금방 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응. 그랬어요. 그가 아니었지만. 그 또한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는 또 무언가를 잃어보았고, 그의 정신은 어지럽게 흔들렸고, 나는 또 그를 떠올렸어요. 나를 놓던 마지막에도, 내 수신단말과 감각신호들을 죄다 그의 이름을 채워버렸던 그 순간에도 그는 성마르게 웃고 있었는데. 차라리 울어주는 편이 좋은 걸지도 모른다고, 그 때 어렴풋이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 미션이 진행되었던 그 날. ..그 날. 장담컨데 나는 그날 전쟁의 정보를 영원히 보존할 거에요. 또다시 나와 함께 있는 인간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불안감, 공포.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보다 더 진화된 소년은 적의 움직임을 장악했고, 나는 나를 만들어낸 흐름이 오랫동안 꿈꾸었던 꿈이 이뤄지는 걸 봤어요. 인류가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로 변화하는 순간. 몇백년을 모은 과학과 기술이 그 탄생을 꿈꾸고 있었어요. 나는 그 것을 위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그걸 목격했죠. 신처럼 인류를 이끌었던 늙은 노인을 대신해서. 하지만 인류가 과학이 만들어낸 것을 통해 진화하고 있을 때에, 그 과학의 산물에 해당하는 나는 그 소년을 보고 있지는 않았어요.
반가워요, 당신.
당신의 목소리, 눈동자, 움직임, 외모. 무엇하나 잊지 않았어요. 충혈되어있었던 살인자의 눈도, 잔인하게 매도하던 목소리도, 살육 속에서 살아가는 자의 피비린내가 풍기던 움직임도, 거친 웃음으로 나의 그를 비웃었던 얼굴도. 기계인 나는 기억을 잃지 않아요. 그리고 그가 나에게 감정적인 면을 집어넣었죠. 반가워요, 반가워요, 나의 살육자. 나는 자신을 얽매인 것들을 놓지못해 떠나가버린 내 파트너를, 그의 심정을 겨우 이해했어요.
폭발음이 울리기 전, 도망치는 붉은 짐승을 화면에 잡은 것은 다분히 고의였어요.
너도 죽어봐, 네가 사냥감이라고 불렀던 그 남자가 그렇게 죽어버린 것처럼, 너도 죽어봐. 기계의 몸은 감정표현에는 적합하지 않고, 속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도 없었지만. 나는 기쁨에 차서, 기꺼이 그를 쫓아가는 두번째 파트너를 전송했어요. 떨어진 곳의 생체신호도, 소리도, 소음도, 민감하게 읽어냈죠. 내 정보는 눈에 잡힐 듯 환하게 죽어 사라지는 그 남자를 봤어요. 영원히 당신이 괴로워하기를, 부디 인간답게 괴로워하고 괴로워하기를. 바램도 저주도 그 때 배웠죠.
나는 기계에요. 조금도 변화는 없이, 나의 소중한 파트너는 죽었고, 그 파트너를 죽인 남자도 죽었죠. 그리고 내 두번째 파트너의 소중한 사람도 떠났고요. 나는 그 것들에 대해 감정을 느끼지는 않아요. 그저 여기에 있죠. 처음 그랬던 것처럼.
.. 뭐, 하나 느끼고 있는 건 있네요.
- 하로
라일 디란디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조금은 닐 디란디를 닮아있어요.
단지 그 것뿐이에요.
fin.
하나요와 베다의 의인화에 대해 고민하다가 도남의 날개를 읽고 잠들면 이런 꿈을 꾸게 됩니다. 끗.
하로 의인화..는 모르겠는데 하로에 인격이 있으면 총공이라고 생각해요, 응. 좋다. ..좋은가?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