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레스탈 비잉의 건담 마이스터로서의 기준치를 클리어했다. 소년을 데려온 미스 스메라기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열 네 살이라는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을만큼 세츠나 F 세이에이는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뛰어난 기체 동조 능력. 장시간의 훈련에도 견뎌내는 정신력. 마이스터가 되자마자 직접 정비에 덤벼들더니 이제와서는 이안 씨와도 기체 세부 구조에 대해 막힘없이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
록온이 손을 들었을 때 소년은 묵묵히 손을 내렸다. 장시간의 사격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렇게 침착한 표정이면 그럴싸한 성과를 냈을 법도 하건만. 록온은 떨떠름하게 웃으며 세츠나가 표적으로 삼고 있던 사격판을 바라보았다. 중앙을 관통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설프게 들이맞은 테두리의 검은 흔적이 몇 개. 그나마 아예 표지판을 벗어나간 것들이 만들어놓은 얼룩 쪽이 훨씬 많았다.
"어이, 세츠나.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
평소의 그 답게 웃음기마저 어린 목소리였지만 역시 기가 질린 어조가 조금쯤 섞여들어가기는 했다. 말없는 어린 아이는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총을 내려놓았다. 처음 귀가 상할까봐 고민하던 끝에 제 손으로 총에 소음기를 장착해줬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록온은 혹시 귀를 다쳤나 3초쯤 고민했다.
"세츠나- 대답정도는 하라구?"
"..."
"별로 못 쏜다고해서 뭐라고 하는 건 아니야. 나도 그다지 잘 쏘는 건 아니고."
거기까지 말하다가 록온은 세츠나가 물끄러미 방금전까지 록온이 표적으로 삼았던 표지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잘못 짚었다. 위로대사가 엇나갔다 싶어 록온은 말문이 막혔다. 세츠나보다도 한참 멀리 떨어져있는 그의 표적에 탄환자국이라고는 중앙에 하나밖에 없었다. 비교될 난이도가 아니다. ‘전탄 명중’을 명랑하게 외치던 하로가 때때로 ‘빗나갔어, 빗나갔어-’하고 세츠나 쪽을 향해 재잘대는 게 혹여 신경이라도 쓰일까봐 내보내기까지 했건만. 록온은 차라리 후회했다. 여기 하로라도 있었다면 좀 분위기가 편했을까. 빤히 쳐다보는 세츠나의 눈빛에 책망이 섞여있는 기분이 들어 록온은 드물게 허둥거렸다.
"에, 그러니까.."
".....엑시아는 접근전 전용이야."
말을 고르는 사이, 어린 소년의 조용한 목소리가 연습실을 울렸다. 너무 담담한 말투라 그게 세츠나 나름의 변명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좀 지나고서야 록온이 세츠나쪽을 바라보았지만 그 때 세츠나는 이미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배당량의 총알을 다 사용한 세츠나는 더 연습할 생각은 없는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기사 세츠나의 말이 맞긴 했다. 접근전 전용의 엑시아에서 세츠나는 더 없이 민첩한 조종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로 납득해서야.
"하지만 어느 정도 장거리 사격이 불가능하면 실전에서는 힘들어질 거라구? 접근하기 전까지는 거리가 있는 법이고."
"..알고 있어."
총을 분해하다 말고, 세츠나는 잠시 머뭇거리듯 손을 멈추었다. 자신의 기체인 엑시아에게 더 없는 애정을 퍼붓는 세츠나가 자기 능력이 엑시아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신경쓸 게 뻔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괜히 아픈 상처를 찔렀나 싶어 록온은 좀 망설였다. 실제 사격이야 기본소양급에 지나지 않으니 MS에서의 사격은 실제 사격과는 다를 거라고 다독여줄까도 했지만 세츠나에게는 별 소용이 없을 것같았다. 어쨌거나 전반적으로 사격에 있어서는 '난사하면 한발은 맞는다'급인 것이다.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뺨을 긁고 록온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스나이퍼용 장총을 집어들었다.
"..무슨..!"
"가만히, 가만히- 나쁜 짓 안하니까."
소년의 뒤로 돌아 들어가 뒤에서부터 오른팔을 잡아올리자, 세츠나는 짤막하게 낮은 비명을 내뱉고 몸을 빼려했다. 경계심 많은 소년을 한가롭게 다독거린 록온은 세츠나의 손에 자신의 총을 얹었다. 잡아봐, 하고 말하자 세츠나는 당황해하면서도 얼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 세츠나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치고, 록온은 어린아이에게 손동작을 가르쳐주는 부모같은 태도로 표적을 향해 몸을 숙였다.
"여기, 조준할 때는 시야를 중앙으로 맞추는 거야. 들여다볼래?"
"..아.."
"봤어?"
목 아래서 소년의 까만 고수머리가 끄덕하자마자 록온은 세츠나의 손가락과 겹쳐있는 방아쇠의 손가락을 당겼다. 세츠나의 것과 마찬가지로 소음기가 달린 총은 쉬익, 하는 소리를 내며 탄환을 밀어냈다. 그 반동에 품 안에서 소년이 비틀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에게는 익숙한 반동이었지만 대인용 장거리 총의 반탄력은 열 네 살 소년에게는 조금 버거웠던 걸까. 팔을 내리며 록온은 선생님같은 어조로 말했다.
"음, 알겠어? 요령은 이런 느낌인데."
"...하아."
"백마디 말보다도 한번의 실천이라고 그러잖아."
설명도 뭐도 없이 다짜고짜 들이민 시범에 세츠나는 조금 기가 질린 듯 한숨을 뱉었다. 그 눈이 책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 것같아 록온은 가벼운 어조로 변명했다. 포기했다는 듯 가슴 팍에 겨우 닿는 소년의 머리가 사락 흔들렸다.
"그럼 다시 해볼래? 재조립하기 귀찮으면 이 걸로 하면 되니까."
감쌌던 팔을 놓으며 말하자, 세츠나는 순순히 록온의 총을 받아들었다. 방금 전 세츠나가 반발력에 밀려나던 것을 생각해 록온은 팔을 놓고도 등 뒤에서 물러나지는 않았다. 록온의 앞에서 방금 전 록온이 그랬던 것처럼 몸을 숙이고 총을 바로 잡았다. 한동안 조준한다 싶더니 소년은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낮은 소리를 내며 발사된 탄환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과녁에 가서 박혔다. 비틀거리며 밀려난 세츠나의 몸을 받쳐주며 록온은 표적을 확인했다. 여전히 좋다고 말하기는 힘든 위치였지만 방금 전 보다야 중앙에 가까웠다. 록온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응, 잘했어! 이런 식이야. 더 연습하면 금방 좋아질.."
".....록온 스트라토스."
밝은 어조로 말하는 록온에게 세츠나는 나직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말하다말고 록온이 세츠나를 돌아보자, 세츠나는 여전히 망설이는 듯한 시선으로 록온에게 그의 총을 건넸다.
"호의는..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난 역시 사격에는 어울리지 않아."
"많이 좋아졌잖아? 하다보면-"
"아니.. 역시, 무리야."
열 네 살 소년의 어릿한 목소리인데도 총을 건네는 세츠나의 눈동자는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담담한 의지가 있었다. 록온은 그 눈 속 아래에 침전되어있는 것이 분명 밝지 않은 이유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약간 씁쓸하게 웃고 록온은 총을 받아들었다. 그 것을 어깨에 매면서 록온은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세츠나에게 손을 뻗어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렸다. 의외의 스킨쉽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세츠나에게 록온은 짐짓 밝게 말했다.
"뭐, 사람에게는 맞고 안 맞는 게 있으니까."
세츠나는 당황한 듯 굳어있었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눈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가 조금 더 안쓰러워, 록온은 굳이 한마디를 더 붙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엑시아가 접근전이면 듀나미스는 장거리 저격특화 타입이니까."
"무슨.."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는 얼떨떨해보이는 얼굴이 너무 어려보여서, 록온은 그가 아직 어리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그래도 입에 담는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눈을 마주치며 웃고, 그는 다정한 어조로 덧붙였다.
"-네가 서툰 부분은 내가 도와주겠다는 거야."
다독이는 듯한 어조에 조금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있던 어린 파일럿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입에 담고나서 록온은 조금 후회했다. 눈 앞에 서 있는 것은 마냥 어린애인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데도 세츠나의 목표를 마주하지 못하던 쓸쓸한 눈빛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좋았다.
"어이, 세츠나, 먼저 갈 거면 미스 스메라기에게 다음 훈련 플랜 받아와!"
사격장을 정리하고 나서며, 록온은 빠른 걸음으로 먼저 앞서가는 세츠나의 등 뒤에 대고 소리질렀다. 세츠나는 뒤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바로 고개를 돌리고 나가는 모습은 건방지거나 예의가 없다기보다는 그야말로 내성적인 어린아이같았다. 전혀 닮을 것이 없는데도 그 뒷모습에 문득 한 모습이 겹쳐졌다.
<오빠>
뇌리에 남은 목소리. 갈색 고수머리에 웃는 얼굴이 귀여운 어린 여자아이. 닮지도 않았는데. 입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록온은 자조를 섞어 웃었다. 언젠가는 웃으며 넘길 날이 올거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는데도 평생 더 나이먹는 일 없이 멈춰선 그 모습은 쉽사리 지워지지도 않았다. 문득 그 이름을 입에 담아보려다 록온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록온은 천천히 걸어나가다가 멈추어섰다. 오른 손을 들어 두 눈을 덮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당연했다.
당연했다.
앞서가던 세츠나 F 세이에이는 뒤에서 록온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알았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세츠나는 천천히 몸을 앞으로 밀어내며 손에 쥐었던 쇠붙이의 감각을 떠올렸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세츠나는 가볍게 입술을 떨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자신은 언제나 그 것을 갖고 있었다. 한결같이 그 무거운 쇠붙이를 짊어지고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쇠붙이를 짊어지고 거리를 내달렸던 아이들. 친구라고 부를 만큼의 교류도 없었지만 그들은 죽어갔다. ..죽어갔다. 손끝이 파르르 떨려와 세츠나는 손을 말아쥐었다. 달라붙을 듯 떨어지지 않는 무겁고 둔한 쇠붙이의 감각. 표적을 노리는 시선을 그 너머로 향했을 때, 겹쳐오는 영상이 있었다.
<소란>
겁에 질린 눈동자.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 전신에 배어있는 절망. 날카롭게 울린 총소리에 뒤덮혀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는 꺼질 듯 가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피에 물든 손가락이 허공에서 힘없이 떨리며 이 쪽을 향해왔었다. 그 가는 목소리가 자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세츠나는 손을 털어버리듯 놓았다.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괴로움도 공포도 없었다. 어깨를 누르는 그 무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펼쳐지는 살육과 피의 전장에서 그 것을 쥐고 달리면서, 단 하나의 이름을 불렀었다.
"..신은, 없어."
자신에게 들려주듯 중얼거리고, 세츠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fin.
세츠나가 저격이 서툰 이유에 대해 이래저래 수다떨다가 나왔던 결과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