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맛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여동생은 그 구름같이 폭신폭신하고 달디단 과자를 엄청나게 좋아했다. 한봉지 사서 떠 안겨주면 작은 얼굴 가득 함빡 웃음을 짓고 받아들고는 혼자서 오물오물 먹곤 했다. 그 웃는 얼굴이 좋아서 어린애의 많지도 않은 용돈을 모아 사다주곤 했다. 고마워 오빠,하고 방긋 웃은 에이미가 종종 걸음으로 멀어져가면 남동생은 장난삼아 에이미의 마시멜로를 한 두개씩 가져다 보란 듯이 먹어치웠다. 에이미가 미간을 무섭게 찡그리고 소리지르다 울음을 터트리고, 그리고 라일이 미안하다고 다시 사다주곤 했던 과자. 지금 생각해보면 라일의 그런 장난도 마시멜로를 사다주던 자신과 기본적으로는 같았을 것이다. 여동생에게 장난치고 싶어서. 소중히 대해주고 싶어서.
지상에 내려왔을 때 그 것을 무심코 사버린 건 아마 그런 추억 때문이었다.
"세츠나, 세츠나-"
트레이닝 룸에서 작은 보폭으로 걸어나오던 약관 16세의 소년이 팀의 리더인 청년을 발견한 것은 3월의 어느 오후였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얼굴 가득 싱글싱글 웃음 짓고 그는 코너에 몸을 숨긴 채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어른답지 못하기는, 하고 한숨 반 걱정 반인 기분으로 평가를 내리고 세츠나는 그가 있는 쪽으로 몸을 옮겼다.
"..무슨 일이지, 록온 스트라토스."
"음- 잠깐만 방에 와볼래?"
"아직 엑시아의 정비를 보러가지 않았다만."
"진짜 잠깐이면 되니까."
빙긋 웃고서 록온은 세츠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일련의 행위가 너무 자연스러워 세츠나는 차마 쳐내지도 못했다. 얼른 와-하고 다시 살래살래 손짓하고 록온은 먼저 앞장섰다. 어른스럽지 못하기는. 또 한번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세츠나는 그 뒤를 따랐다. 복도를 이동하면서 록온은 자꾸만 세츠나쪽을 돌아보았다. 그 얼굴이 잔뜩 걱정에 차 있음을 깨닫고 세츠나는 머리가 조금 아파졌다. 처음 무중력 상태에 몹시도 애먹었던 소년을 보호자라도 되는 양 얼싸안고 가르쳐주었던 것은 그다. ..그렇다고 해서 2년이나 지난 지금 넘어질리도 없는데. 과보호에 가까운 동료의 태도가 또 어린애같아 세츠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록온은 가벼운 걸음으로 방안에 들어갔다. 그가 뭔가 잔뜩 즐거워하고 있음을 세츠나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크루 전원에게 요리를 해주겠답시고 부엌을 개판으로 만들었을 때나(알렐루야는 맛있게 먹어치웠고 티에리아는 묵묵히 먹은 후 위장약을 요청했다) 베다의 계획 사이에 틈이 생겼을 때 다같이 섬에서 휴식을 취하자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을 때(알렐루야는 토끼모양 사과를 깎을 수 있게 되어 좋아했고 묵묵히 땡볕 아래서 카레 재료를 비커로 계량한 티에리아는 일사병에 걸려 제몸관리도 못한 마이스터를 용서할 수 없다며 침대에 누워 쨍알쨍알 자기비하를 했다)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좀 걱정이다. 세츠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록온을 주의깊게 쳐다보았다.
"짜잔-!"
다섯 살 어린애도 놀래킬 수 없을 것같은 고리짝 시절 포즈를 취하며 록온은 방 한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갑작스레 몸을 돌린 상대에 경직되는 본능을 세츠나는 이성으로 억눌렀다. 눈 앞에 있는 건 록온 스트라토스고, 바보다. 위험하지는 않다. 그런 세츠나의 심정을 모르는지,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 록온은 다시 한번 빙긋 웃고는 세츠나의 손을 잡아(너무 자연스러운 태도에 세츠나는 손을 빼려다 멈추었다) 그 위에 꺼내든 것을 올려놓았다. 투명한 재질에 작은 핑크색 하트 무늬가 아로새겨진 포장지. 입구를 힘있게 묶은 보라색 리본. 내용물은 몇개인가의-
"..마시멜로?"
"정-답!"
멍하니 튀어나온 대답에 록온은 빙긋 웃고 봉투를 든 세츠나의 손을 오므려주었다. 맞췄으니까 선물이야,하고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뱉는 록온을 보며 세츠나는 너무 바보같아서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아이의 시선을 뭘로 착각했는지 록온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먹을래? 맛있을 걸."
"..고맙지만 나중에,"
"응?"
"아니, ..지금 먹겠다."
정중히 사양하려던 세츠나는 그 녹색 눈동자를 마주치자 이도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른인 주제에, 당신이란 사람은. 거절하면 실망할 것같았다. 그리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꾸물꾸물 지극히 소녀스러운 포장을 풀면서 세츠나는 바보스러운 기분이 드는 걸 꾹꾹 억눌렀다. 손가락 마디만한 마시멜로를 하나 집어 어색하게 입에 넣었다. 보송보송한 감촉에 아랫니로 씹자 끔찍하리만치 달디 단 덩어리가 입속을 굴러다녔다. 나쁜 맛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단 것을 먹는 것은 인생에 몇번 없던 일이었다. 콜라와 핫도그라면 또 모르지만, 이런 본격적인 과자는..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록온이 걱정스레 물었다.
"맛없어?"
"...아니."
생각에 잠긴 나머지 세츠나의 얼굴이 진지해진 것을 다른 무엇으로 오해했던 걸까. 입안에 든 덩어리를 꿀꺽 삼키고 세츠나는 고개를 저었다. 록온은 조금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사 남자애한테는 그렇게 맛난 먹거리가 못 되려나."
"맛있다니까."
"아니, 그렇게 무리해서 먹지는 않아도 돼. 미안, 세츠나. ..세츠나?"
조금 아쉬워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그에게 문득 울컥 화가 났다. 입구를 뜯어 손에 봉투를 탈탈 털어냈다. 그리고 손 안으로 굴러떨어진 네다섯개쯤 되는 그 것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세츠나, 하고 록온이 놀란 목소리로 부르는 것을 무시하고 세츠나는 입안에 든 달디단 덩어리들을 우적우적 씹었다. 목이 메일 뻔 한 것을 가까스로 넘기고 꿀꺽 삼킨 후에, 세츠나는 록온을 쏘아보다시피했다.
"맛있다."
표정은 소태라도 씹은 것마냥 찡그려진 채 뚱해 있었고,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하하하..."
록온이 놀란 얼굴을 했다가 이내 실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뚱해져서 세츠나는 그를 응시했다. 머리에 손을 대고 웃음을 억누르던 그가 이내 폭소했다. 한 팔로 와락 세츠나를 끌어안고 록온은 아이의 머리카락에 뺨을 부볐다.
"아 진짜! 넌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달라붙지마라."
"그래그래."
말과 행동이 완벽하게 따로 놀았다. 부비부비를 실행하는 8살 연상의 동료를 조금 한심하게 생각하며 세츠나는 얌전히 안겨있었다. 문득 손에 쥐고 있던 봉투에 하얀 과자가 하나 남아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마저 먹어버리는 게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청년의 손에 붙들려 좀처럼 움직일 수 없는 손을 굼실굼실 움직여 세츠나는 남은 마시멜로를 손에 털었다. 겨우겨우 팔을 들어올려, 입술 끝으로 그 하얀 조각을 물었는데,
"아, 반만 줄래?"
입에 물은 걸 무슨 재주로, 라고 지극히 정당한 위생적인 시점에서 세츠나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넘쳐흐르는 록온은 장난스레 고개를 숙였다. 별안간 녹색의 맑은 눈동자가 시야를 확 채웠고, 입술에 애정이 가득담긴 감촉이 닿았고, 가지런한 하얀 이가 폭신폭신한 그 것을 절반 물어 끊었고, 솜씨좋게 움직인 혀가 그 것을 입안으로 거두어들였다.
"아, 오랜만에 먹는다."
입안에 녹는 감촉에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청년이 고개를 떼었을 때 세츠나는 경직해있었다. 삼십줄 아버지가 열 살이 될까말까한 자식에게 한다면 모를까 스물 네살의 청년이 열 여섯살의 어린 동료에게 하기에는 좀 낯뜨거운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 아는지 록온은 살짝 뺨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세츠나는 별안간 밀려오는 분노에 또다시 울컥했다.
"록온 스트라토스."
"응?"
단호하고 선명한, 그러나 한없이 아이같은 목소리에 눈꼽만큼의 악의도 없이 록온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세츠나는 작은 짐승처럼 손을 뻗어 록온의 목께를 낚아챘다. 어어어, 하고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록온이 기우뚱했을 때, 세츠나는 제 것을 가져간 그 입술을 자기 입으로 무자비하게 찍어눌렀다.
첨언하면 작아도 사나이인지라 발돋움은 하지 않았다.
덤으로 단맛이 남아있는 입술 속을 구석구석 수색해 록온의 입 속에서 얼마간 녹아 조그마해진 그 것을 도로 강탈해내고, 아이는 멱살을 부여잡았던 손을 놔주었다. 정신이 반쯤 표백되어 고개를 뗀 록온을 선연하게 빛나는 적갈색 눈동자로 쏘아보고, 세츠나는 이 이상 단호할 수 없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줬다 뺏지 마라."
아이에게는 상상도 못했던 크리티컬 히트에 카운터 어택으로 들어온 저 한마디에 록온은 기어이 비틀거리다가 벽에 등짝을 부딪혔다. 그러게 애초부터 잘 못 날 곳에는 씨앗을 뿌리는 게 아니라고 옛 선인들도 말씀하셨다던가 아니라던가. 세츠나는 시선 한번 돌리지 않고 유유히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저기, 그러니까, 얼레? 저기, 저기, 세츠나, 세츠나, 세츠나? 세츠나아아아아---!!!!"
...한참이나 지나고 콩알딱지 반쪽만큼 제정신이 돌아온 록온은 절규했다. 그러나 닫힌 문 너머로 소리질러봤자, 길고 농후했던 그 것의 감촉에 대해서 떠올려봤자, 승리자는 떠났고 사태는 끝났다.
3일 후 지상 작전을 끝내고 귀환하는 길에, 건담 마이스터 티에리아 아데는 건담 버체의 스크린으로 같은 작전에 임하는 마이스터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세츠나 F 세이에이의 건담 엑시아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본디부터 말썽많은 동료에 대해 그리 신의가 깊지 않았던 티에리아는 즉각 통신을 연결했다.
[세츠나 F 세이에이, 콕핏에 실은 그게 뭐지?]
[필요한 거다.]
[..건담을 뭘로 취급하는 건가!!]
세츠나는 현명하게도 히스테리가 하늘에 닿을 것같은 티에리아의 쨍알쨍알하는 목소리가 죽어마땅을 외치기 전에 통신음을 최저로 낮추었다. 통신화면에 가득 뜬 티에리아의 미간에 주름이 있는대로 잡혀있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세츠나는 콕핏을 가득 채운 마시멜로 봉지가 화면에 안나오게끔 꾹꾹 눌러 감추었다.
귀환한 두 동료-라고 쓰고 아이라고 읽는다-들을 환영하려고 트레이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록온이, 콕핏이 열리는 순간 우수수수 떨어진 마시멜로 봉지에 경악하고 뒤돌아 튄 후일담은, 굳이 적을 필요도 없으리라.
fin.
히스테리가 극치에 달해 세츠나에게 총을 겨누며 뛰어왔던 티에리아가 간단한 자초지종을 듣고(마시멜로, 록온, 보복, 키스)세츠나와 손잡고 록온을 뒤쫓는 작전에 돌입했다는 것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후일담.
12. 白い狂氣 (하얀 광기) / 白い狂氣
그러고보면 록온 생일을 그냥 보냈구나 싶어 3월 14일이 얼마 안남은 시점에서 기념글입니다.
좋아해요 닐 디란디. 이 웬수야. 라이리는 괴롭혀댄 전적이 있어서 보류(..)
뒤늦은 발렌타인(티에리아)와 한참 이른 빼빼로 데이(알렐루야)도 나올지도 모릅니다o<-<
Posted by 네츠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