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S] Chapter 1. 남겨진 당신에게
Chapter. 1 남겨진.당신에게
늦여름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세상이 완연히 가을빛으로 물들 무렵이었다. 늦여름에 접어들 때쯤부터 코테츠 상은 자기 집에는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반드시 저녁을 권유받았고, 그 다음은 당연한 것처럼 집으로 함께 오곤 했다. 싫을 리야 없었지만 집에 너무 돌아가지 않는 것도 좀, 하고 말해보자 코테츠 상은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바니네 집이 시원하단 말이야.>
어린아이라도 부리지 않을 투정이었다. 물론 코테츠 상의 평범한 아파트보다 고급 맨션의 냉방 시스템이 훨씬 좋은 건 사실이다. 또 코테츠 상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을 만큼 그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러 '투정'이라고 단언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더위를 탄다고 한 주제에, 집에 와서는 한사코 옆에 달라븥어 떨어지질 않았던 것이다.
“저기 코테츠 상, 슬슬 귀찮아요. 좀 떨어지세요.”
“우와, 바니가 나 싫대. 쇼크-”
“어린애도 아니고 아무도 거기까지 말 안했거든요.”
“미움받았어-”
어린애같은 말투로 씨알도 안먹힐 우는 시늉을 하는 코테츠 상을 보고 있노라니 기가 차서 결국에는 읽으려던 책을 덮었다. 하기사 아까부터 계속 옆에서 치덕치덕 달라붙질 않나, 책장을 가리지 않나, 옆으로 끼어들어서 시야를 가리지 않나 온갖 장난을 쳐댄 턱에 거의 읽지 않은 거나 다름없었다. 원망의 눈으로 찌릿 노려봐주자, 코테츠 상은 찔끔하고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네 녀석네 집은 냉방이 너무 잘 들어서 춥단 말이야.”
“더우니까 최고온도로- 같은 소리한 건 코테츠 상이잖아요. 이제와서 무슨 딴 소리를.”
“아니 더워, 완전 더워. 그래도 아저씨는 이렇게 되면 뼈가 시린다구.”
“..30년 후에나 먹힐 소리 하지 마세요. 추우면 얼마나 춥다고 엄살은.”
“음, 딱 너 하나 옆에 끼고 있지 않으면 감기 걸릴 정도로 추워.”
-불의의 습격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코테츠 상은 얄미울 정도로 매끄럽게 웃었다.
“이 말은 지금도 먹혀? 바니-쨩.”
“....당장 이불에 둘둘 말아서 창밖으로 던지고 싶을 만큼 잘 먹히네요.”
“이익, 잘도 말하는구만. 이러니까 요즘 애들은.”
“<요즘 애>하고 사귀는 코테츠 상은 뭡니까?”
“아저씨는 그런 거 모른다뭐.”
여전히 유들유들할 정도로 딴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코테츠 상은 빙글빙글 웃으며 팔을 둘러왔다. 덮었던 책을 집에 옆에 내려놓고 그쪽으로 몸을 돌리자 대번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솔직한 것도 이정도면, 정말이지. 머리 속으로 솟아오르는 말들을 밀어넣으며 한숨을 쉬었다.
“<모른다뭐>라니, 당신 내일 모레몇 자기 나이가 얼마인지 알고있어요?”
“바니쨩보다는 많잖아. 날 존경해.”
“하아?”
“연상을 좀더 우러러보라구. ”
“그게 떼쓰면서 할 말입니까.”
“모르냐? 내 고향에는 장유유서라고, 윗사람은 존중하라는-”
“전 그 나라 사람이 아니니까 좀 조용히 하세요.”
귀찮은 듯 손을 뻗어 입을 막아버리자, 재잘재잘 떠들던 코테츠 상은 순식간에 어린아이처럼 조용해졌다. 입을 막힌 주제에 눈에는 장난기가 잔뜩 들어서는 기대에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착하게 있어요 놀아주세요'라는 표정이다. 정말이지 이 아저씨는. 목 안쪽으로 웃음을 억누르면서 머리를 거칠게 흐트러트렸었더니, 우아아 하고 바보같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행복한 듯이 웃었다. 가슴이 조여올만큼 행복해보이는 얼굴에 손이 멈추었다. 코테츠상은 파고들 듯이 바싹 달라붙어서는 얼굴을 가슴께에 대고 눈을 감았다. 좀더 해줘. 조르는 목소리에 숨이 턱 막혔다.
"..이렇게 달라붙으면 또 덥다고 할 거잖아요.“
“지금은 또 추워. 초가을이고.”
“아침에는 늦여름이라 덥다더니?”
“그때그때 다르거든. 이 나이가 되면 교활해져.”
팔 안에서 장난치듯 말하고 코테츠 상은 조용해졌다. 품 안의 그에게 팔베개를 둘러준 채 손끝으로 가만가만 그의 머리칼을 빗어내렸다. 코테츠 상은 기분좋은 듯 눈을 감았다. 그러다 심심해졌는지 눈을 뜨고 팔을 뻗어 내 왼손을 끌어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감촉을 확인하듯이.
"...초가을하니까. 알아? 동양에는 백중절이라는 날이 있어."
"백..중,절이요?"
"과연 바니쨩. 발음 나쁘지 않은데. 음,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날이라고 해."
"아하, 할로윈같은 거군요."
할로윈행사는 별로 치러보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갔다. 아주 어릴 때 사탕바구니를 들고 거리를 걸었던 기억을 어렴풋이 더듬으며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갸웃한 코테츠 상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좀 달라. 축제..랑은 거리가 멀고.유령한테서 몸을 감추지도 않고."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돌아오는 사람은..."
코테츠 상은 손을 만지작거리던 것도 잊고 단어를 고민하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끙끙 고민하더니 이내 마음에 드는 단어를 찾았는지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리워했던 사람이 돌아오는 거야."
웃는 얼굴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는데, 어쩐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죽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든가. 할머니의 할머니라든가.. 할머니가 그런 걸 열심히 챙겼지. 가족이라던가. 그런 사람들이 돌아오는 거야. 그리운 사람들."
빨리 오라고 불을 피우기도 하고. 타고가라고 열매에 다리를 꽂아서 탈 것을 만들어주기도하고 음, 소랑 말이었던가. 가지하고.. 오이? 아니었던 것같은데. 이건 어머니한테 물어보지 않으면 모르겠다. 코테츠 상의 말은 도중에서부터 혼잣말처럼 변했다. 코테츠 상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설명하고 싶어하는 얼굴을 하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단어를 하나하나 골라나갔다. 스스로도 모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을 그에게, 아득한 혈연들이 전해준 풍습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혹은 그 풍습의 의미는.
“얼마 후면 그 날이야.”
그렇게만 말하고 코테츠 상은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지만 좀처럼 읽을 수가 없어 그저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을 신경쓰지도 않은 채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다소 멍해보이기까지한 얼굴로 오이랑 가지랑 맞나- 하고 중얼거렸다. 아이같은 얼굴이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었다. 왜 그래, 하는 얼굴로 그가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힘을 주어서 끌어안았다.
“같이 준비할까요, 백중절.“
“바니?“
“그냥,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나는 별로-“
“돌아왔으면 하는 그리운 사람, 있잖아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황한 듯한 코테츠 상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머리 속에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마 그도 같은 사람을 떠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손가락의 반지도, 액자 속의 눈부시게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도, 그 것을 바라보는 코테츠 상의 시선도 자신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마도 코테츠 상을 위해서라면 분명 기쁘게 기원할 수 있겠지.
“..아니, 됐어. 이제 안하게 된지도 오래고. ”
그렇게.말하면서 코테츠 상은 팔을 둘러왔다. 품안으로 파고드는 그의 어깨를 가만히 끌어안아 등을 쓸어주었다. 간지러워 바니- 목 안쪽으로 웃는 웃음소리가 가슴을 타고 전해졌다. 문득 가슴이 저릿해졌다.
이 사람, 덥거나 추운 게 아니라.
외로웠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돌연 코끝이 시큰해져 얼굴을 가리려 그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코테츠 상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며 품안에서 꿈틀꿈틀 움직였다.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눈물이 고이는 것을 참았다. 그 기색을 눈치챘는지 코테츠 상의 웃음소리도 천천히 멎었다. 방 안이 조용해지고 나서 얼마 후에, 허리에 둘러진 코테츠 상의 손이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었다.
-되려 울음이 날 것 같은, 다정한 손길이었다.
늦여름, 초가을의 조금 쓸쓸하고 행복한 두 사람.
일단은 주륵주륵 이을 생각으로 쓰고 있고 아마도 챕터 7까지 있긴 한데 어디까지 쓸지는..(먼눈)
하나하나의 이야기로도 ok,가 되게끔 써보려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