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하우스 6시즌 17화 -혹은 왜 윌슨이 개새끼인가-
하우스를 처음 봤을 때 저는 하우스를 말도 못하게 못된 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기 시즌의 포커싱은 하우스가 아니라 환자들에게 맞춰져있었고 그들을 치료하는 건 받아들이지만 그들과 소통할 생각은 없는 하우스는 그야말로 "내 목숨을 구해준 개새끼"였죠. 사실 그게 하우스의 본질 맞았던 것같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에게도 세상에게도 지독하게 상처입었고, 또 어떤 면에서는 포기한 상태니까요.
시즌 1에서 설핏 보이던 그의 이야기들은 시즌 2에서 조금 더 늘어납니다. 스테이시와의 이야기가 추가되면서 이야기는 하우스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고, 3,4시즌에서 그는 홀로서기 혹은 변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그것이 출연료 문제에서 발발했던 변화였던 어쨌던 그의 가족 3인은 그의 곁을 떠나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하면서 그의 일상이 변하죠. 그리고 이쯤에서부터 이야기의 중점은 환자들이 아니라 하우스에게로 옮겨갑니다. 단순한 괴짜 의사 닥터하우스의 삶이 조금씩 묻어나오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레고리 하우스가 이야기의 메인이 되죠.
덩달아 그의 유일한 친구인 윌슨의 비중도 커져갑니다. 이 순박하고 착한 친구는 하우스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상대입니다. 그 삐뚤어진 홈즈가 한결같이 자신을 받아주는 왓슨에게만은 물심양면으로 신뢰를 보내고 있었던 것처럼 하우스는 윌슨의 말만큼은 믿어줍니다. 사실 하우스와 월슨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하우스가 아니라 윌슨이에요. 윌슨은 하우스가 없어도 되지만, 하우스에게는 유일한 게 윌슨이니까요. 친구가 많은 남자가 가진 최고의 친구와 친구가 없는 남자가 가진 유일한 친구라는 자리는 사실 시작부터 공평한 관계는 아니죠.
그리고 하우스를 끊임없이 개화시키려는 게 윌슨이기도 합니다. 친구와 대화를 하라던가 사람을 이해하라던가. 괴물 트럭에 대한 유치한(..) 접점을 제외하면 하우스와 윌슨이 보여주는 모습은 완전히 달라요. 그런데도 윌슨은 사실 자기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하우스를 놓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에요. 그 커디조차 루카스와의 파스카 주일을 보낼 때에는 하우스를 집에 들이지 않았지만 윌슨은 가족과의 저녁을 차버리고 하우스와 있어주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만큼 하우스는 무방비하게 그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앰버 사건때에-_- 윌슨의 행동은 어딜보나 정신나간 놈이었죠. 연인을 잃고 맛이 간 놈이요. 평소의 그라면 하지 않았을 부당하고 이기적이고 나쁜 일들을 쏟아놓고 하우스는 그를 위해 제 목숨을 겁니다. 원인제공자로서의 죄책감보다도 상대가 윌슨이었다는게 컸을 거에요. 이 인간은 하우스가 거짓말을 안한다고 말하는 유일한 인간이었으니까요.
아놔.
이쯤되면 하우스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조금씩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하우스와 윌슨의 관계에서 균형은 분명 맞지 않거든요. 윌슨은 하우스를 떼어낼 수 있지만 하우스는 못해요. 가장 친한 게 아니라 유일하게 친한 사람이니까요. 그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친구가 사라졌을 때 스토킹을 하고 낯짝 두껍게 따라붙은 거죠. 대체재가 없거든요.
그리고 윌슨에게도 하우스는 어느 정도 대체재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우스가 무례한 인간이라면 윌슨은 너무 예의바른 인간입니다. 지나치게요. 다른 사람의 손가락을 긋느니 자기 배를 찔러버릴 인간인 윌슨이 대놓고 잔소리를 하고, 투덜거리고, 막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우스밖에 없어요. 하우스는 아무렇지 않게 칼을 휘두르는 남자이니만큼 자기가 칼을 꽂아도 괜찮은 사람이었거든요. '못된' 윌슨이 되어도 전혀 문제없을 사람이 하우스였고 그래서 윌슨은 이 막되먹은 친구와의 관계를 즐깁니다. 편한 사람이거든요. 여기까지는 둘다 좋았던 듯합니다. 하지만 윌슨이 많은 여자를 떠나보내고서- 앰버를 만나죠.
앰버가 튀어나왔을 때 윌슨은 조금씩 바뀌는 법을 배웁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침대를 고르라고하고, 앙칼지게 싸우면서도 자신을 향해서는 웃어주고, 답답한 그를 풀어주는 마법같은 여자거든요. '못된' 윌슨이 되라고 등을 떠밀어주는 여자였던 겁니다. 그가 바뀌어도 문제 없는 여자.
그리고 이 분은 깔끔하게 하우스를 놓습니다.
그래도 되는 건 알아요. 이 사람은 평범한 인간이고 자신을 알아주는 여자와 친구가 있다면 당연히 여자가 우선입니다. 하지만 하우스는요? 이 사람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요. 이 사람은 이미 자신의 여자를 경험했습니다. 스테이시 말이에요. 그리고 그 사람을 보냈죠. 하우스는 자기가 손쓸도리가 없이 망가져있는 사람이라는 걸 압니다. 그렇게 망가졌기 때문에 자기 여자를 떠내보냈고, 그 여자가 돌아왔을 때도 결국 못잡았으니까요. 이 사람이 재대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적었어요. 그 와중에 윌슨은 진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요. 아마 윌슨도 바보가 아닌이상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우스보다 앰버가 더 중요해질 수 있어요. 하우스는 그에게 친구고, 앰버는 그에게 연인이니까.
빡이 슬슬 돌죠. 앰버 사건때 하우스에게 뇌수술을 종용한 시점에서 이 분은 제 안의 훌륭한 개자식이었습니다. 사후 판단도 끝내주죠. 하우스가 윌슨과의 관계에 목말라 있긴 했지만 윌슨은 일단 그를 용서할 수 없으니 그를 떠납니다. 약 3개월. 하우스가 스토킹을 시도하는 그 사이에 이 남자는 제 상처를 꿰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요. 음, 물론 하우스도 무시해가면서. 그리고 하우스에게 사건이 터지자 이 남자는 다시 돌아옵니다. 그의 '좋은' 윌슨적인 성격 탓도 있겠고, 하우스가 그에게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이기도 했을 테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3개월 동안 자신에게 하우스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생각해요. 앰버가 떠난 그에게 하우스마저 없으면 그는 '못된' 윌슨이 될 수가 없으니까. 함께해온 시간은 그만큼 길고, 하우스의 대체재였던 앰버를 잃어버린 후에 윌슨에게 그만큼 무자비하게 개입해줄 사람은 없었어요. 하우스외에는요. 그녀가 떠난 이후 3개월 중 당신과 보낸 3일이 가장 즐거웠다며 윌슨은 다시 하우스의 친구자리로 복귀합니다.
앰버가 있었다면 윌슨은 서서히 하우스와 멀어져갔을 겁니다. 그가 타인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너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좋은 사람으로 있지 않아도 된다는 법을 배우면 하우스가 그의 유일한-친구보다 더 깊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 앰버가 없어졌을 때 하우스를 용서할 수 없어서 떠났고, 떠난 이후 견딜 수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하우스에게 왔습니다.
5-6시즌이 되면서 하우스는 많은 변화를 겪고, 윌슨도 많이 변합니다. 하우스는 보다 유순해지고 윌슨은 보다 독해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우스는 여전히 서툽니다. 타임에게 다소 친절해졌다고 해서 그가 자기 자신을 아낄 수 있게 된 건 아니거든요. 한번 사랑할 뻔했던 커디도 떠나간 지금 하우스가 신경쓰는 건 윌슨 하나입니다. 그를 제외하면 딱히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거든요. 서틴을 그런 눈으로 볼 리도 없을 뿐더러, 체이스들은 이미 그를 너무 잘 아는 하위의 위치이고, 거짓말을 할 줄 아는 타웁은 아예 아니고.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서 윌슨은 하우스와 살면서 배운 '못된' 윌슨을 조금씩 펴나가면서 과거의 여성과 다시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보다 먼저 나가는 친구에게 하우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우유의 위치를 옮겨놓는 아주 작은 심술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윌슨은 그의 친구지 연인이 아니고, 평생 곁에 붙어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하우스가 붙잡을 끈은 지금 현재로서는 그밖에 없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윌슨은 나아갈 수 있을 테구요.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라 곁에 있지만, 혹시 다른 사람이 생긴다면 떠날 수 있는 남자와
다른 사람을 만들지 못하니까 자기를 이해해주는 친구에게 매달리는 남자.
이 관계, 아무리 봐도 불공평해요.
이야기가 뭔가 엄청나게 길어졌는데, 요점은 하우스는 윌슨을 버릴 수 없지만 윌슨은 하우스를 버릴 수 있다는 것. 좋은 남자 제임스 윌슨, 이쯤되면 매우매우매우 훌륭한, 개새끼 아닌가요.